항상 유쾌해서, 목소리가 귀여워서, 정치 성향을 자꾸 밝혀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심리학자 황상민 교수님.

미국, 유럽, 일본의 기준과 이론이 아닌 한국인의 심리 자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10여년의 연구.

'한국인의 심리코드'는 그 결과를 황상민 교수님 스타일대로 쉽고, 재밌고, 직설적인 비유를 통해 정리한 책이다.

일전에 TEDxSeoul 때 직접 발표해주셨던 내용이 이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추천 영상. (영상 중간에 빵 터진 내 모습이 잠시...)

 

책은 참 직설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및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고, 대치동 치맛바람을 비웃고, 무기력에 빠진 대한민국 직장인과 명품 소비에 열을 내는 젊은 여성들을 폄하한다. 불특정다수의 행태를 분석했기에 당연히 그럴 수 밖에. 그래서 더 재밌었다.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고, 더 나은 모습을 위한 해결책도 제시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그런건 중요치 않다. 나 자신을 알고, 내가 속한 사회의 성향과 심리코드가 어떤지 알면, 막연히 스쳐지나갈 많은 현상들이나 사건들에 대한 나만의 통찰력/시선이 생기게 되고 자가판단이 가능해질 것이다. 내가 속해있는 사회이고, 책 내에서 그린 '한국인 자체'의 모습이 소름돋을 만큼 나 자신의 모습이었지만, "꼭 찍어 이런 것"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웠던 우리 한국인의 심리코드나 현상들을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어려웠는데, 이 책은 좋은 자료이자 기회였다.

추천!

 

 

아래는 몇 가지 인상 깊었던 Quotes.

 

<성공, 출세>

잘나고 성공한 사람은 그럴 만한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믿으려 한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 현재 나의 삶이 나름 이해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좋은 집안', '좋은 교육', '훌륭한 경제적 지원'이다. 현재 자신의 형편이 좋지 않다고 생각할수록 이 믿음은 더 강력해진다. 지금의 어려움이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념하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다.


성공이나 출세라는 단어는 그 무엇보다 한국 사람이 자신에 대해 가진 부정적 정체성을 자극한다. 남에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의 정체성이다. 성공보다는 출세가 더 스스로 체념하고 자포자기한 모습을 느끼게 한다. 성공은 그래도 '돈을 많이 벌었다' 정도로도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출세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번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타인으로부터, 사회적으로 번듯한 인물로 인정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난할 때에는 '교육 = 성공, 출세' 였지만, 점차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구분되면서, '성공=돈', '출세=교육'이라는 세분화된 믿음이 만들어졌다. 과거엔 또 '출세=공직진출'이었다.

 

한국사람이 성공을 간절히 원하고 좇으면서도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간절히 원하는 성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짜 추구해야 하는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대문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심지어는 남들이 보기에 성공했다고 보이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든다.


어려서는 성적으로 평가 받고, 커서는 연봉으로 평가 받는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것은 스스로 속물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대표적 행동이 오히려 우리 생존을 옭죄는 올가미가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성공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해야한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관계없이 자신을 남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성공의 모습이 드러난다.

 

<신입사원사춘기>

대다수의 신입 사원은 주변의 축하와 부러움 속에 입사하지만, 곧 야근과 격무, 억지스러운 상사, 폭음으로 점철된 회식을 경험하면서 곧 회사 생활에 지치고 만다. '이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면 사직서를 쓴다. 자신의 조직 경험을 통해 고백적으로 진단한 후에 친절한 제안이 나온다. 사춘기 신입 사원을 잡아줄 수 있는 친절한 멘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나름의 해결책이다. 그러나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한국 사회, 한국 조직이 겪는 성장통이라고 진단한다. 그럴듯하게 돌렸지만, 구직난 속의 구인난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여럽사리 취직한 신입 사원들의 조직 이탈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 성공했던 조직 운영 방식이나 조직 구성원 활용 방식을 신세대 직원들이 쉽게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니, 현재 성공한 조직들이 더 이상 과거의 성공 공식을 새로운 조직 구성원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 사회는 이것을 조직 속의 '세대 차' 문제라고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조직에서 원하는 것을 잘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던 기성세대와 달리, 정보화 사회의 신세대는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하는 것이 왜 그런지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자기 스스로 그 답을 찾기보다는 누군가 자신을 납득시켜주기를 기대한다.

사실 이들의 행동은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보다 훨씬 까다롭다. 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기는 참 힘들다. 각자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팀장이나 임원을 보며 10년 뒤, 20년 뒤에 내가 저런 모습으로 살 것이라 생각하면 힘이 빠진다. 무엇보다 이 조직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내가 저들과 다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패배한 자들의 독백이 아니다. 국내 유수 기업에서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신세대 사원의 이야기다. 이런 차이는 업무 수행 방식에서 더욱 미묘하게 드러난다.

신세대 조직인은 자기가 하는 일과 추구하는 것에 분명한 소신이 있지만, 남의 관심 사항은 내가 알 바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기성세대 사원은 신세대의 이런 특성을 사회성이 떨어지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약한 것으로 본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삶의 방식을 잘 모른다고 여긴다. '모르는 거야, 안하는 거야?' 하는 마음에서 이들이 불편하다. 당연하게 믿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개인의 정체성>

개인적 특성(나는 좀 말이 많아요, 재미있는 사람이고요, 잘 웃고, 친구와 어울리기를 좋아해요…)을 언급하며 자신을 알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의 정체는 '나'가 아니라 내가 속한 가족이나 직장, 학교 등 집단으로 쉽게 확인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한국인의 집단주의라고 해석한다. 집단과 개인을 동일시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특성보다는 그의 이력, 특히 소속한 집단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알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멋있는 사람이지만 보통 사람일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남 보기에 무난하며 나름 세련된 사람이다. 어느 정도는 남에게 그럴 듯하며 친절하고 멋진 사람이지만, 튀는 것은 싫어 한다는 얘기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안철수다.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그가 왜 멋진 사람인지 묻게 되면 조금은 당혹스럽다.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멋진 이야기를 하고, 분명 잘났고, 다르기에 튀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충분히 유명하고 안정적이며 성공하였기에 그 사람이 부러운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장 잘 반영한 캐릭터로는 연예인 유재석이 있다. 삶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높지만 갈등은 원하지 않으며,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배려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배려'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같은 자기 계발서가 바로 한국인이 막연하게 지향하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내가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가에 따라 나의 정체가 달라진다. 멋진 사람의 정체성을 가질 수도 있고, 체념하고 자포자기한 사람의 정체성을 가질 수도 있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을 되짚어보자. 지금은 아무도 이 일을 언급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국익' 운운하며 과학 영웅을 바라고 믿던 대중은 당혹스러워했다. 심지어 음모론까지 나왔다. 하지만 믿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을 보게 되었고, 그 마음은 결국 부끄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자기 믿음을 바꾸는 가장 좋은 심리적 방어는 빨리 잊는 것이다.

 

<결혼, 짝 / 행복, 가치>

오늘날 결혼하는 두 쌍 중 한 쌍 비율로 이혼하는 이유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 관계의 파탄 때문이다. 결혼 성사 여부가 아니라 행복한 결혼 생활의 유지에 대해 생각할 때이다.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조건과 결혼 생활이 잘 유지되기 위한 조건은 전혀 다르다. 한국 사람에게 결혼이나 짝이란 '만나는 것' 또는 '결혼식'이 중심이다. 결혼정보회사가 특별히 개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인의 정체석이 결혼이나 짝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남에게 멋있게 보여주는 이벤트이고, 결혼생활은 남이 알면 안되고 또 알릴 수도 없는 그들만의 고민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결혼이나 짝을 생각할 때, 각자의 결혼 조건을 염두에 둔다. 심지어 자신에게 맞는 짝이 없어 결혼이 늦어졌다고 하소연 하는 골드미스들도 조건에 맞는 사람이 있었다면 결혼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자신의 짝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짝을 찾는 순간에 자신의 감정이나 믿음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이고, 경제적 조건이나 사회적 조건이 그럴 듯하게 맞추어진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더 많은 돈이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결정적 요소라고 말한다. 그런데 미국인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즐기기 위해, 가족이나 중요한 시간과 더 시간을 보내고자'이지만, 한국인의 경우, 돈은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유일한 답이다. 한국인은 돈이 더 많으면 더 행복하고 더 잘 살 것이라고 믿는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 각자 다양한 답을 찾을 수 있는데, 왜 한국인은 그렇게 되기 쉽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한국인이 가지는 '잘 산다는 것'의 의미 때문이다.

한국인은 무엇을 하더라도 나의 만족감을 위해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또 남이 나를 번듯하게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다. '멋진사람'으로 '번듯하게' 보이기 위해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려는 행동'은 자신의 정체성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나타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뚜렷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 자체가 낯선 한국인에게 소비 행위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대신 표현해주는 가장 편리한 행동 방식이다. 한국사람에게 소비란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과시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멋진 행위를 하는 것이다. 소비를 하는 것이 만족감이나 뿌듯함을 준다. 뚜렷한 개성이나 특성에 의한 소비가 아니기에 가능한 남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더 다른사람이 무엇을 입는가, 어떻게 꾸미는가를 열심히 살펴본다. 한국인의 동조 행동 또는 대세 추종 행동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바로 소비 행위이다. 남들이 멋있다거나 괜찮다고 하면, 그게 무엇이든 열심히 따라 하려 한다. 이 사회에서 유행은 피해갈 수 없는 힘이자, 누구나 한 번은 따라야 하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남에게 인정받을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남 시선 신경 안 쓰고 자기 나름의 삶을 만들어 간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성취나 명성을 사회가 더 많이 인정해주기 바라는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일견 개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처럼 보이는데, 알고 보면 집단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행동이다. (퇴근 후 영어공부,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원가를 순회하는 직장인들)

 

 

Fine. x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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