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1. 한겨례 칼럼 <김정운의 남자에게> 묶음. 왜 한국남자들이 '이 모양'인지에 대한 고찰과 귀여운 해결책들.

2. 남성 유명인사들의 '물건'이 지니는 identity 분석 및 이를 통한 인물탐구

김정운 교수는 능구렁이다. 발랄하고 약간 변태에 똘아이다. (그를 모독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가 책에서 자신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김정운 교수의 책은 믿고 일단 읽는 편이다. 그의 책 <일본열광>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가 아니다. 삼청동 술 집에서 우연히 본 '쭉쭉빵빵 어린 아가씨들에 둘러쌓인' 그와 칼럼리스트 김태훈을 보고나서,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고, 무조건적 신뢰까지 생긴거 같다.

책에서 다룬 '이 시대 대표 남자'들의 물건 10개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내용

논리적으로 자세히 따져보면 빌 게이츠가 스티브 잡스보다 훨씬 더 사랑받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과 빌 게이츠의 2007년 하버드 졸업식 연설을 비교해보라. 잡스의 연설은 고통, 열등감, 공격성으로 일관된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반면 게이츠의 연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빈곤 퇴치, 환경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도덕적으로 빌 게이츠의 연설이 훨씬 우아하고 폼 난다. 그러나 감정 자본주의(현대 자본주의에서 거래되는 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상품에 숨겨진 감정 - 프랑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에서는 다르다. 빌게이츠의 스토리텔링은 오래된 록펠러 방식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내면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내면에는 우리와 똑같은 문제로 좌절하고, 고민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 성공으로 인해 보통사람들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한다는 내러티브에 사람들은 감동한다. 한국 기업에 바져있는 것은 바로 이 감정 자본주의적 특징들이다. 독거노인들을 찾아가고, 연탄을 나르고,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주는 구태의연한 '사회 공헌' 방식으로 감정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란 그리 쉽지 않다. 기업의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업 경영에 정서적 스토리텔링이 존재하지 않으니 '느낌'이 있는 물건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 더, 애플의 승승장구에 배 아파하는 이들에게 그래도 약간의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의 느낌에 기초한 감정 자본주의는 쉽게 질린다. 오래 못 간다. 아이돌 스타의 눈물 젖은 빵에 열광했던 팬들이 불과 몇 년후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처럼, 잡스교도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

 

사람이 왜 그렇게 금방 싫증을 내는가에 관해 칙센트미하이는 '능력'과 '과제'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과제가 내 능력보다 어려우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걱정에 빠진다. 반대로 과제가 내 능력보다 못하면 지루함과 권태를 느끼고 무관심에 빠진다. 그러니까 내 능력과 과제는 지속적으로 서로 발전해야 끊임없이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내 능력보다 과제가 약간 더 높은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견딜 만한 불안이다. 이 경우 각성 상태가 유지되며 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욱 몰두하게 된다.

 

면도기 선전은 남자에게 광고하는 게 아니다. 여자들이 상상하는 에로틱한 남성상을 구체화해 여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평범한 남자들은 여성들이 열광하고, 흥분하는 그 면도기광고 모델을 흉내 낼 따름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면도하는 모습에서 에로티시즘을 느낀다고 한다. 남자들이 자신들에게 없는 여자의 가슴에 열광하듯, 여자들도 자신들에게 결핍된 수염과 그 수염을 정리하는 면도에서 에로티시즘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김정운 교수의 저서는 대한민국 남성의 행복한 노후, 중년 생활을 위한 참고서이다. 김정운 교수 본인은 황상민 교수가 너무 잘나가서 질투나고, 요즘엔 김난도 교수까지 잘나가서 배아파 죽겠다고 한다. 이런 교활한 귀여움이 김정운 교수의 특장점인 것 같다. 진정 이런 부분은 배우고 싶다.

 

Fine. x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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