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괴팍한' 감독.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쓴 감독. 김성근. 그가 직접 쓴 첫 번 째 책. <김성근이다>

궁금했다. 하위권의 팀들을 강팀으로 변화시키고, 한 물간 선수들을 단단하게 만드는 야신(野神)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생관,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자서전 아닌 리더의 이야기

책 내용이 '자서전'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짧다. SK 감독을 그만두고 낸 책이니만큼, 그 당시의 조금은 편안해진 심경을 담은 에세이의 성격이 강하다.

전체 책에 1/4 정도가 김성근 감독과 그의 제자들의 흑백사진으로 가득 차 있는 것도 마음을 더 절절하게 한다. 장르가 포토 에세이집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다만, '야구 이야기'나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조직, 팀을 움직이는 '경영 이야기'로서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진다. 타협하지 않는 괴팍한 완벽주의자로서 김성근 감독의 모습에서 스티브 잡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르시스트, 꼰대, 이상주의자

리더로서 김성근 감독은 '나르시스트'이다. 글들에서 자부심을 넘어선 자만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는 자신감과 해안이 느껴진다. 개인으로서 그는 외롭고 고독할 때가 많았다고 했지만, 야구와 승부의 세계에서 희열을 느끼곤 결국 자기가 옳을 것임을 항상 믿는 나르시스트이다. 승리가 의무이자 목표인 인생을 평생 살아왔기에 자연히 그렇게 됐겠지... 인상적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김성근 감독은 '꼰대'다. 본인만의 스타일을 절대 버리지 않고 타협하지도 않는다. 구단에 잘 보이고자 눈치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실력있는 최고 감독이지만 선뜻 감독으로 모시기 어렵다고 이야기 하는게 이 부분이다. 선수들에게도 많은 말을 하지도 않고, 사적인 만남도 거의 없다. 공정하게 선수들을 기용하고 그들의 감정을 흔들어 놓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감독이라기 보다 무사들을 거느린 '장군'의 위엄이다.

그는 과거에도, 지금도' 이상주의자'이다. 야구를 넓게 보아 '일', '직업'에 신념을 갖고 올인하는 장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고 김성근 감독은 단언한다. 선수들에게 '야구란 너에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진심을 끌어내고자 한다. 진심과 선한 마음이 없으면 끊임없이 노력하기 어렵고, 시련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 승리와 성공의 공식이라고 말하고 그를 위해 산다고 말한다.

 

인상적인 내용 필사

내가 야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 하겠다는 뜻만 있으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이룰 수 있다는 것. 스스로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을 뛰어넘고, 다음에는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다시 한계를 만나고, 그것을 뛰어넘으면서 큰사람으로 성장해나가는 것. 그것이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평생 남이 닦아 놓은 길만 따라갈 게 아니라면 자신이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누군가 그 길을 뒤따라온다면 그걸로 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누가 나한테 휴식 시간에는 뭘 하냐고 하면, 나는 휴식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1년 내내, 365일 야구 한다. 하루도 안 쉰다. 내 머릿속은 분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야구 하나로 꽉 차 있다. 집에서도 온통 야구 생각뿐이다. 삼성 감독 시절에는 이사 가는 집이 어딘지도 몰랐다.

 

내 별명 중 하나가 '잠자리 눈'이다. 가만히 서서 사방을 다 본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실제로 연습 때 내가 쳐다보고 있는 줄 알고 열심히 하거나, 반대로 내가 안 본다고 생각하고 요령을 피우는 선수가 가끔 있다. 열심히 하는 건 괜찮지만 요령을 피우다 걸리는 선수는 그날 쓰러질 대까지 연습해야 한다. 그것이 누구이든 본다는 것은 평상시에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뭐가 바뀌었는지, 왜 바뀌었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가 나온다. 바로 여기에서 선수가 가야 할 길이 나온다. 나는 그 길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2009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미팅에서 선수들에게 한 말은 딱 두 마디였다. "우리 하던 그대로 야구 하자.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세상살이라고 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해서 일을 하는지, 일하기 위해서 살아남는지 두 가지로 갈리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남으려고 일을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건 참 불쌍한 인생이 아닌가 싶다. 일이란 것은 소위 신념을 가지고 강한 의지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일이 아니라 살아남는 게 목적인 사람들은 신념이 약하다. 그때그때 편한 길만 찾고 도전하지 않는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것을 뛰어넘는 과정 속에서 성장을 하고 강해지는 건데, 그냥 멈춰버린다. 이런 자세로 일을 하면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책임을 다 남한테 돌린다. 변명하고 해명하느라 바쁘다. 나는 세상에서 이런 사람들이 제일 싫다.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후회스러운 인생을 왜 사나 싶다. 선수들에게도 책임을 묻는 손가락이 언제나 자신을 향해 있어야지 다른 사람한테 가 있으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야구는 항상 벼랑 끝에서 길을 찾는 것과 같다. 매 순간이 벼랑 끝이고 위기다. 잠시도 흐름을 놓치면 안된다. 그러다 보니 연습량이 많아진다. 이쯤 하면 됐다 싶은 순간이 야구에는 없다. 나는 시간이 많으면 잠도 안 자고 밤새도록 야구만 하고 싶다. 처음 감독을 시작했을 때는 왜 방망이를 안고 자는 놈이 없는지 답답했다. 그만큼 절실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만족과 여유다. 자기 속에 빠져서 만족하는 사람에게 내일은 없다.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패배자와 다름없다. 끊임없이 더 높은 목표를 만들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연습하는 것, 그것이 진짜 승리자의 자세다.

 

보통 야구에서는 5인 선발 로테이션에서 1,2 선발을 필승카드로 사용한다. ... SK는 이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전략을 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팀이 따르는 방식을 똑같이 따른다면 상대방을 이기기는 힘들다 여기가 리더의 전략 지점이고 고민의 출발점이다. ... 나는 결코 상대팀 1,2 선발과 붙는 경기에 김광현을 쓰지 않았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김광현이 3,4패 정도밖에 하지 않으면서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 줬다. 이것은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결단은 모든 것을 다 얻겠다는 마음에서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얼마나 과감하게 버릴 수 있냐가 중요하다.

 

항상 강조하는 것이 순한 마음이다. 순한 마음으로 태도를 바르게 갖고, 그 위에 강한 몸과 정신을 만들라는 것. 그래야 야구를 더 잘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나 김성근을 이해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야구를 이해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야구를 이해해달라는 거, 내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다. 매스컴에 야구를 똑바로 보라고 말하는 것도 다 이런 뜻에서다. 나도 덮을 건 눈에 안보이게 덮어버리고, 옆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나 눈치 살피면서 야구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야구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해만 끼친다. 정직하고 순수하게 열심히 하는 선수가 울고, 눈치보고 재주부린 선수가 웃게된다. 그러면 야구는 오래 못간다.

 

나는 어떻게든 선수를 안고 갈 수 있으면 내가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한다. 그 선수를 데리고 있는다. 나 하나가 욕을 먹으면 그 선수 하나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나는 결과를 내기 위해서 선수를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어떻게 해서든 이길 수 있게 만들어야 하니까 그렇다. 승리해야 내가 안은 선수들이 야구를 할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다. 나는 남들은 잘 못 찾아내는 선수들의 숨겨진 가능성을 잘 찾아내는데, 찾아내는데 애를 쓰기 때문이다. 내가 선수를 안고 가기 위해서 어덯게든 그 가능성을 찾아내야 하니까 찾게 되는 것이다.

 

SK 처음 왔을 때 훈련이 끝나면 매일 정신 교육을 했다. 고교선수도 아니고 프로 선수들한테 정신 교육을 한다는게 말이되냐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선수들에게 가장 먼저 묻는 것은 야구가 자신한테 무엇이냐는 것이다. 열이면 열, 자신의 모든 것, 생명과도 같다고 말한다. 모범 답안이다. 모범 답안은 쉽다. 감독은 이 모범 답안을 선수의 '진심'으로 바꿔줘야 한다. 나는 선수에게 "생명과도 같은 야구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하고,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질문한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 대답을 종이에 적어보라고 하는데, 그때부터 선수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지금까지 입으로만 야구가 중요하다고 말했지 실제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 당황해한다. ... 나는 선수들에게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질문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글로 써보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선수들은 자신의 야구 인생의 주체가 되고 스스로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갖게 된다.

 

감독 생활에서 내게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야구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윗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될 때는 그 지시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노장선수든 신인선수든 리더가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내가 믿으면 훈련을 통해서 쓸 수 있는 선수로 만들면 된다. 태평양의 임호균이 그랬고, SK의 김재현이 그랬다. 내가 믿으면 믿을수록 훈련을 확실하게 시키고 경기에 내보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책임은 내가 진다는 것이다. 내가 선수를 쓰는 것은 나의 판단이고 거기에 따르는 책임은 감독인 내가 진다. 내가 책임을 진다는 마음이 확고해야 다른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감독으로서 항상 자유를 주장했다. 나한테 선수들 운용 전권을 다랄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꺾이는 한이 있어도 타협하지 않았다. 이것은 감독으로서 자기 훈련과도 같다.

 

거북이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거북이는 뒷걸음질은 하지 못한다. 묵묵히 앞으로만 나아간다. 사람도 일단 결심을 하면 옆을 보거나 뒷걸음치지 않아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렵다고 포기하고, 힘들다고 피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재주 부리면서 요령 피는 사람들도 있다. 토끼처럼 사는 사람들이다. 토끼는 어려움이 있을 때 재빠르게 뛰어서 도망가버린다. 거짓말하고, 요령 피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거북이는 다르다. 거북이는 위기를 만나면 머리와 두손, 두 발을 제 몸 안으로 깊숙이 웅크린다.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한다. 모든 질문을 자신한테 던지면서 가만히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가만히 묵묵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 속에 인내도 있고, 답도 있다.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사는 게 다르다. 정말 절실하게 원하면 뛰게 돼 있다. 그만큼 달리게 돼 있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힘들고 고달퍼도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야지 싶다.

 

 

김성근 감독의 고독과 외길인생을 느끼고 싶다면, 그와 관련된 루머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just read.

Fine.x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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