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마신 '공정 무역' 표시가 있는 커피 한 잔. 과연 '공정 무역'이 사실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된 코너 우드먼의 '체험 삶의 현장' 이야기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공정 거래/무역 인증의 '불공정'함과 글로벌 대기업들의 중국-아프리카 등 제 3 세계에 대한 노동착취 인권침해에 대한 불편하고 거북한 진실을 옅 볼 수 있다.

나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코너 우드먼은 전작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전직 애널리스트이다(소개 동영상). 잘 나가던 억대 연봉의 금융맨이 회사를 박차고나와 오히려 현재의 금융시장이나 자본주의 등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정의감 넘치는 '변절자'의 아이콘이자 인기 강연자, BBC의 특파원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신작인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앙 아메리카 등 무역과 제조의 먹이사슬의 말단에서 노동자, 광부, 어부, 농부로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저자인 코너 우드먼이 직접 체험한 내용과 왜 그들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거대 기업들과 공정 무역 단체들이 만들어 놓은 현재의 계약 체제와 거래 방법에 대해 깊게 조사한 내용들로 이루어져있다.

평소에 아름다운가게가 말하는 공정무역 커피와 스타벅스가 말하는 공정무역 커피는 실제 아프리카 커피 농장에게는 어떻게 다른지, 애플의 팍스콘의 노동자들은 왜 한 달 동안 16명이나 투신자살을 했는지가 궁금했었기에 전체적인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다.

몇 가지 내용을 적어보았다.

 

공정 무역 재단과 공정 무역 브랜드의 현실

"사람들은 좋아하는 브랜드를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그저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내 차가 제일 좋아. 내 커피가 제일 좋아. 그리고 사람들은 캐드버리나 네슬레 같은 유명한 대형 브랜드의 제품이 (공정 무역을 위해) 품질을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가난한 농부들을 지원하면서 더 윤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느끼길 원하지만, 그렇다고 품질이 낮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대기업의 해법은 명백하다. 팔고 있는 제품을 그대로 생산하되, 소비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 윤리적 로고를 붙이면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는다.

공정 무역 재단의 수익은 90%가 도매상, 기업들이 재단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비용을 지급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그 중 절반의 비용이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감독하는 행정비로 지출된다. 그렇다면 수입의 나머지 반은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 남은 돈은 공정 무역 브랜드의 캠페인과 홍보비로 나간다. 덕분에 영국 내에서 지난해 공정 무역 로고가 붙은 제품의 판매액은 영국에서만 10억파운드(1조 8000억)에 달했다. 소매상은 경기가 나뻐져서 쪼들릴 때 공정 무역 스티커가 붙은 브랜드들은 연간 20%의 이익이 상승되었다.

"대규모 농장은 에너지와 탄소를 낭비할 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따지면 비효율적이기까지 합니다. 영세 농민이 1헥타르(축구장 면적의 1.2배)에서 27을 생산하는데, 공장 같은 대형 농장은 1헥타르에서 1을 생산해 냅니다. 게다가 대형 농장의 제품은 유기농일 수가 없는데도 모두 공정 무역 인증을 받고 있지요."

 

팍스콘과 중국의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경영자들

팍스콘에서 한달에 10대 노동자 16명이 자살을 했다. 만약 유럽에서 10대 청소년들이 한 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하다가 한달동안 16명이 자살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그 기업은 엄청난 곤경과 전 매스컴의 질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팍스콘은? '중국이니까...'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조용하게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중국의 공장 노동자들은 거의 80% 이상이 자국의 이주 노동자이다(나라 자체가 워낙 넓기 때문에). 이들은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조금이라도(특히 숙식관련) 좋은 조건이 있는 회사가 있다면 바로 이직한다. 그렇기에 기업의 대표들은 그들이 불만이 생기지 않는 선, 다른 기업과 비슷한 평균 수준은 유지한다. 하지만 절대 먼저 개선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 돈으로 경영진에 투자를 하거나 유명 교수를 데려오는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저 자신에게 조금만 투자하면(대학 교육 수강중인 CEO) 사업은 그 이상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 내면세계에 다다르고 있어요. 이전 세대는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무엇을 남겨 놓았을까요?" 그러나 그는 그런 수업을 이주 노동자들에게 제공해 그들이 자신만의 '내면세계'에 다다르도록 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현명한 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떠나 버리면 어떡합니까?"

 

광산과 전쟁의 죽음의 그림자 속에 선 아프리카 광부

전자 산업계는 무역 조합인 국제 주석 연구 협회(ITRI)에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수출되는 주석 광물에 대해 종합적인 실사 계획을 세워, 분쟁지역 광물에 대한 우려를 해결할 것을 요청했다. 이 계획은 애플, 델, HP, IBM, 인텔, MS, 노키아, 필립스, 소니 등 전자 제품 부문 주요 고객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ITRI의 계획에서는 무장 단체와의 광물거래를 분명히 다루지 않고 있으며 광부들의 작업 환경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계획에는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을 '권장'하며 환경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만 있을 뿐 눈에 띄는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투명하고 책임있는 안건은 어디에도 없다.

 

좋은 공정 무역/거래의 대표적인 사례

1. 커피

아프리카의 커피 농부들이 킬리만자로 주민 협동조합(KNCU)과 같은 주민 협동조합을 통해 커피를 거래(스타벅스 등 다국적 기업은 이런 조합들과 계약-거래를 한다)하는 것보다 직접 영세기업과 거래하는 것이 실제 농부들에게 두 배 이상의 보상을 해줄 수 있고, 지속가능한 발전적 환경과 작물 품질을 올릴 수 있도록 관심과 도움을 받게된다. 이들이 파는 커피는 두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품질이 좋아서 최고급 커피 시장에 판매할 수 있다. 최고급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커피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따라서 이곳 커피 가격이 조금 세지만 그 품질을 감안하면 오히려 저렴한 편이다. 둘째, 이러한 혜택이 농부들에게 직접 돌아간다. 커피 재배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매년 더 좋은 커피를 더 많이 거래할 수 있다.

2. 올람

코트디부아르는 지난 몇 달간 내가 방문했던 다른 국가의 문제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니카라과처럼 내전을 경험했고, 탄자니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여러 국가처럼 심각한 환경, 사회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콩고 민주공화국과 아프가니스탄처럼 끔찍한 정치적 위기에 처해있으며 매일같이 반란 집단의 폭력을 겪고 있다. 또한 라오스처럼 해외 투자를 받아 지독하게 가난한 농업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코트디부아르에도 지속 가능하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사업이 있다. 바로 면화사업이다.
올람이라는 기업이 코트디부아르의 면화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올람은 세계 60여 개국에서 생산되는 스무가지 정도의 농산품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업체다. 이 기업의 한 해 매출액은 100억 달러(11조원)에 이른다. 올람은 면화, 커피, 초콜릿을 취급한다. 싱가포르 증권 거래소의 상장 업체이며, 막스 앤 스펜스, 갭 등 유수의 브랜드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농부들에게 품질이 좋은 씨앗을 적당한 가격에 팔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회사는 씨앗을 무료로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농부들이 우리 씨앗만 사용하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해서 공급망에 다른 혼합물이 섞여들 위험이 줄어들 테니까요."

올람은 농부들이 최상의 환경에서 면화를 재배할 수 있도록 살충제를 미리 제공하고 비료 구매 자금도 무이자로 대출해준다. 제 3세계 농부들은 가장 큰 문제는 생산물의 품질 향상에 투자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올람은 면화 농부들의 근심을 없애 주고자 했다. 농부들은 생산 공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얻은 이익에서 대출금을 갚고 나머지를 가져간다.

올람에 생산물을 공급하는 전체 농민의 수가 2년 사이 세배가 증가했다.

"우리는 인증 같은건 없어요. 우리 상품은 소비자가 원해야 존재합니다. 소비자가 인증을 원한다면 마련할 수도 있죠. 그런데 왜 사람한테 참 잘했다는 말을 듣자고 수고비를 건네고, 그 사람의 브랜드를 우리 브랜드 위에 얹어야 하는 거죠?"

 

 

40년 전,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이 짊어진 사회적 책임이 단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바로 소유주, 즉 주주들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버는 것이었다. 프리드먼은 사회 전반의 이익을 위해 돈을 쓰려면 개인 돈을 써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투자는 '기업에 부과해서는 안되는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다. 프리드먼에게 기업이 짊어질 사회적 책임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자원을 사용해 수익을 늘리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
최근에 공정 무역 재단 같은 캠페인 그룹이 커피와 초콜릿 등 공급망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만 그들의 성과는 냉정하게 말해 사람들의 의식을 고취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이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친 부분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분명히 이런 활동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마련했다고 할 수는 있다.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과 이윤 창출이 결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 가는 중이다. '윤리'는 이제 단순히 '올바른'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케팅에도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즘 대기업의 트렌드가 '윤리적 상품'이라고 한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한 8가지 방법

1. 좋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나쁜 일을 안하는게 더 중요하다 : 니카라과 해안 마을의 바닷가재 잡이 어부들이 끔찍한 작업 방식을 통해 불구가 되는데, 그 방식을 그만두게 하는 것. 기부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2. 홍보를 목적으로 좋은 일을 하지 마라 : 체계적, 지속적이지 못한 개인의 기부,는 반짝 효과일 뿐이다. 지속할 수 있는 계획만이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업도 똑같다). 코트디부아르의 올람이 좋은 예이다.

3. 채찍 - 대중을 속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 언젠가들통이 난다. 기업의 범법행위처럼 사람들에게 민감한 이야깃거리는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진다.

4. 당근 - 선행은 언제나 보상을 받는다.

5. 밑바닥부터 시작해 땀 흘려 노력하라 : 올람처럼 차근차근 실제 농부들의 삶을 살피는 것 처럼 천천히 아래부터 밟아 올라가라.

6. 중국을 경계하라 : 중국은 세계 제조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그 자본력과 규모로 전 세계에 진출한다. 서양국가들이 식민지 정책으로 제 3세계를 피폐하게 만든 것 이상으로 중국은 대상 국가들을 돌보지 않고 그들만의 이익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라오스 등의 사례)

7.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한다 : 애플-폭스콘의 사례에서만 보더라도, 가장 멋지고 혁신적인 애플마저 팍스콘의 현실을 저버리고 나몰라라 하고 있다. 최종 제품의 회사와 브랜드의 모습만 볼 것이아니라 자신들이 연관된 모든 약자들에게도 책임질일은 책임져야한다.

8. 대기업은 스스로 착해지지 않는다 : 국가, 정부도 각성하고 기업들을 제재해아한다. 소비자 또한 책임의식을 갖고 제품을 고르고 목소리를 내야한다.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책에 대해 아쉬웠던 점들

출판을 맡은 쪽이 안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책 읽은 소회를 적으면서 불만을 적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의 두 작품을 '나는 세계일주로' 시리즈로 묶으려는 출판사의 의도와 책 제목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는 원제 "Around the world in 80 Trades."이고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는 원제 "Unfair Trade"이다.) 세계일주를 동경하는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좋았겠지만, 책 내용은 세계일주가 목표가 아니고 작가 또한 세계일주라는 단어 조차 쓰지 않는데 굳이 제목을 그렇게 해두어서 읽는 내내 '세계일주'의 프레임을 갖게 한다. 읽는 내내 걸리적거렸다.

더불어, 번역이 읽기 불편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문장이 너무 짧고 단순 문장번역의 나열로만 구성해 놓는 부분이 많아서, 내용이 문장 별 문단 별로 뚝뚝 끊겼다. 이야기 속에 등장한 인물들의 의중이나 감정선, 사건의 전후관계의 긴장감을 이어가지를 못하는 부분이 챕터마다 한 두 부분 있었던 것 같다. 아쉬웠다.

 

 

공정무역이라는 단어와 팍스콘의 사태, 아프리카 자원 개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흥미로울만한 이야기. 먹이사슬의 말단과 제 3세계의 슬픔이 느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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