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나는 '디지털 과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메일을 확인하고, 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의 메시지 확인과 답장은 실시간이다. 과거에 학창시절 자료부터 현재 업무의 자료까지 내 흔적과 역할, 능력이 컴퓨터에 디지털화되어 저장된다. 회사에서는 컴퓨터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스마트 폰과 랩탑이 없는 평소 생활이 상상이 안 된다.

이러한 상황이 내게 큰 문제나 스트레스는 아니다. 하지만 긴 글을 쓰거나, 읽는 것이 예전보다 어려워지고 순간 집중력 저하나 멍하게 모니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시간이 늘어가는 내 모습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디지털 단식>은 그런 내 아쉬움을 줄여줄 수 있는 조언이길 기대하며 접하게 됐다.

 

<디지털 단식>의 프롤로그. 저자의 문제의식과 의도가 축약되어 있다.

혹시 서점에 갔다가 '디지털 단식'이라는 제목에 흥미를 느껴 자기도 모르게 이 책을 구입하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으로 대표되는 IT 기술에 대한 의존증, 즉 디지털 중독에 대해 잠재적인 불안감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중독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이 책의 집필의 이유는 단순 명쾌하다. IT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이 일부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최첨단 기기의 사용에 따라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불이익이 이익을 상쇄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IT 기기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버리지 못해 무의식중에 피해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디지털 단식>에서는  IT 중독이 유발하는 문제점과 실제 업무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내고, 우리에게 경각심을 잊지 말 것을 강조한다. 책 내용 중 액기스라고 느낀 부분만 요약해 보았다.

 

IT 중독의 문제점

1.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홍수

  •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 쏟아지는 디지털 정보의 양은 인간의 처리 능력을 넘어섰다.
  • 지금은 모든 곳에서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홍수, 범람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2. 양질의 유익한 아날로그 시간이 격감

  • 사안을 깊이 생각하거나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시간이 대폭 감소했다.
  • 일일이 지긋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 특히 중간 관리직은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것만도 벅차다.
  • 옆자리의 동료와도 이메일로 대화한다.
  • 서로 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관심조차 없다.

3. 효율성 하락과 창조성 약화

  • 동료와 조직에 대한 공감력이 약해졌다.
  • 업무가 흘러가고 있는 전체적인 맥락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 애초에 눈짓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항도 메일로 전달한다.
  • 이메일 참조나 숨은 참조가 늘어나 커뮤니케이션의 홍수를 조정한다.
  • 부가 가치가 낮은 업무들에 시달려 부가 가치가 높은 업무를 하지 못한다.

 

업무현장에서 발생하는 IT 중독, 디지털 과잉의 사례들

이메일은 책임 회피의 도구

  • 이메일 중 참조 이메일을 받는 직원들은 '나한테만 보낸 것이 아니니까 굳이 나까지 읽어 볼 필요는 없겠지.',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하겠지뭐.'라는 생각으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발신자는 이메일을 보냄으로써 누군가에게 공을 던져 줬다고 생각하지만, 수신자는 자신이 그 공을 받았다는 인식이나 책임감을 가지지 않는다. 책임 소내는 공중에 붕 떠 버린 채 누구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정해지거나 해결되지 않은 상태가 계속된다.
  • 이메일은 서로의 생각을 잘 아는 사람들이나 결속이 강한 조직의 구성원, 친절한 사람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편리한 도구다. 대화하는 사람끼리 서로 편리한 시간에 메일을 보내고 받는 '시차' 활용을 할 수 있어 그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러나 원래 친밀한 사이가 아니거나 양호한 관계가 아닌 사람과 대화할 때는 대화 내용이 딱딱하고 까칠해질 뿐만 아니라 앞에서 든 예와 같이
  • '어지간하면 상대방이 던진 공을 받기를 거부하는' 반응이 돌아오기 쉽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나 재난, 혹은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일을 멀리하고 싶다!'라는 방어 본능 때문이다. 이메일의 경우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깜빡했습니다.","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같은 핑계를 대며 쉽게 거절할 수 있다.
  • 내선으로 이야기하고 직접 사무실을 찾아가 얼굴을 마주하고 일정을 조정하는 방법은 언뜻 불편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훨신 빨리 회의 시간을 정할 수 있으며 사전 정보 수집과 의견 교환까지 가능하다. 때로는 사전 조정을 할 때 나눈 대화만으로도 회의의 출발 지점의 수준을 크게 높일 수도 있다.
  • 이메일은 언뜻 편리해 보이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고 안이하게 의존한다면 결과적으로 업무 효율과 의사 결정의 속도를 떨어트리는 원인이 될 때도 많다.

 

복사&붙여넣기만 있을 뿐 자기 생각이 없다.

  • 수집한 정보를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보이도록 하는 데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급기야는 인터넷에서 옮겨 붙인 정보와 자신의 생각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럴듯한 인용문이나 그래프를 복사할 뿐,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정리한 근거나 인과관계, 진짜 분석이나 제안을 내놓지는 못한다. 부가가치 없는 자료지만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 앉아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해 보기 좋게 자료를 만든 본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완성된 자료를 보며 '내가 생각해도 잘 만들었어.'라는 성취감을 느끼기조차 한다.
  • 회의는 조용하고 원활히, 아무도 열을 내는 일 없이 무난하게 종료된다. "좀 더 상황을 살피자.", "그 부서에 상황을 재확인하도록 지시하자.", "이번에는 일단 보류하자."등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고 아무도 '공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끝나는 회의가 늘어가고 있으니 결국 언제나 원점 근처를 떠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일상화된 조직은 중증 IT 중독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서 치장 기술만 늘고 있다.

  • 컴퓨터와 프리젠테이션 작성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효용 하나하나는 하찮은 편리함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복사해 빽빽하게 담게 된다. 사소한 편리함에 혹해 많은 시간을 들여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화려하게 치장할 것인가, 아니면 발로 뛰며 현장 조사와 인터뷰를 하고 머릴에서 김이 날 정도로 고찰하는 데 시간을 사용할 것인가? 이 선택은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중대한 갈림길이 된다.

 

방대한 데이터, 그러나 너무 뻔한 결론

  • 원래 정보 분석을 하는 목적은 '다음에 어떤 수를 써야 할 것인가?'라는 행동을 결정하기 위한 근거와 재료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책을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면 그것이 처음에 기대하거나 예상했던 결과를 냈는지 되돌아보고 좀 더 정확도와 효과가 높은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다시 분석을 해야 한다. 그런데 데이터와 툴의 비대화는 판단하고 행동하기까지의 과정만을 중시하는 풍조로 이어졌다. 행동을 위한 분석이 아니라 단순히 분석을 위한 분석을 낳고 만 것이다. 가장 중시해야 할 '행동'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것을 정당화하는 분석 결과가 나열되기 쉽다.
  • IT 중독은 해석 능력을 크게 좀 먹는다. 정보 홍수와 잘못된 접근방식의 반복에 시간을 빼앗겨 결과적으로 현장, 현물, 현실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현장, 현물, 현실과 접할 기회가 줄어들면 취사선택된 부분이나 정보화된 사실의 뒷면에 숨겨진 것을 상상하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검색 엔진을 통해 발견한 베스트셀러와 자신의 생각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증상이 심각해지면 해석 능력은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퇴화한다. 사실을 알았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주어진 사실의 단편적 정보를 현장감 없이 무작정 받아들이게 될 뿐이다.
  • '0'과 '1'로 구성되는 디지털의 세계에서는 수치로 잴 수 있는 정량 정보만이 중시되며 정성 정보는 무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장에서의 '왠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각 정보는 무시되고 단지 모니터에 표시되는 정량 정보는 판단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IT는 무섭고 편리한 도구

  • 회사는 보통 20%의 하이 퍼포머, 60%의 중간층, 20%의 하위층의 인력으로 이루어져있다. 과거에 60%의 중간층은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발로 뜀으로써 메우려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무작정 현장으로 달려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거나 주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20%의 하이 퍼포머의 노하우를 배우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IT 중독이 만연한 현재는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일하며 구속되는 과정에서 직장의 커뮤니티와도 멀어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약해져 60%의 중간층은 20%의 하위층 쪽에 가까워졌다. 그 결과 애꿎은 20%의 하이 퍼포머들만 점점 더 지쳐가고 있다.
  • IT 중독은 인간의 심층 심리에 각인되어 있는, 생물의 근원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욕구에서 기인한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조금이라도 빨리 알고 싶다.', '더 많이 대화하고 싶다.'라는 욕구는 인간이 가진 고도의 '지능'에 기인한 본능이다. '더 먹고 싶다!'라는 식욕과 동질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 IT는 무서울 만큼 편리한 '도구'다. 그러나 우리는 그 편리함이 가져오는 '편안함'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질'을 동반하지 않는 '편안함'은 현장에서 '깊이'와 '우직함'을 빼앗으며,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현장력의 약화를 초래한다. 현장 곳곳에 '적당주의'가 만연하게 되면 기업의 부활과 경제 성장 또한 영영 불가능해진다.
  • 한국과 일본은 특히 IT 분야에서 명백히 미국을 맹신해 왔다. 그리고 미국산 IT는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영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 오퍼레이션 개혁과 세트를 이루어 맹렬한 기세로 흘러들어 왔다. 각계각층을 막론하고 미국에서 탄생한 것, 미국에서 확산된 것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달려들었으며, 그 반응 속도가 빠를수록 선진적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 ERP, CRM, SFA, BPR, SCM 등 새로 들어온 '알파벳 세 글자' 경영 기법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시스템이 한 세트를 이루었다. 요컨데 새로 도입되는 패키지 소프트웨어나 업무 시스템 같은 툴에는 효과적일 듯한 경영 기법 이론이 함께 따라오게 마련이었고, 새 IT 툴을 도입하는 건지 경영 관리 기법을 도입하는 건지조차 혼동하게 되었다. … 경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본래의 검토 포인트와 초점은 어느새인가 대폭 축소화되고 'SFA 툴을 도입하는 것=경영을 개혁하는 것', 'CRM 툴을 도입하는 것=고객 만족을 실현하는 것'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값비싼 라이선스 이용료는 미국 IT 기업의 호주머니에 고스란히 들어갔으며, 실제 운용 등 이용률이 낮은 업무만을 시스템이나 툴을 들여온 해당 기업이 맡게 되었다.
  •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예쁘고 멋진 그래프와 일러스트로 장식되고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의 기승전결 시나리오대로 완성된 '잘 만들어진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불과 한 시간 만에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정말 고객과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까? 사내외의 IT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집한 대량의 조사 데이터를 복잡한 최신 알고리즘으로 순식간에 분석했다고 해서 클라이언트가 감탄할 수준의 제안을 해 안건을 따낼 수 있을까? 혹은 회사의 방침을 바꾸는 혁신적인 제안을 상부에 할 수 있을까? 혹은 회사의 방침을 바꾸는 혁신적인 제안을 상부에 할 수 있을까? 이런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자료는, 컬러도 아닌 흑백에 삽화나 그래프도 적고 내용은 불친절하며 페이지도 적지만 발로 뛰어 현장, 현물, 현실과 접촉하고 당사자를 직접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궁리해 완성한 자료나 프레젠테이션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소회

어떤 회사든 대부분의 직원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 중 약 60 퍼센트만이 진짜로 일하는 시간이다. - 사카마키 히사시 (캐논전자 사장)

위 문장이 <디지털 단식>에서 제기한 문제점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지 않나 싶다. '디지털 과식'에 IT 중독의 모습을 보이는 나로서는 <디지털 단식>은 내가 잊고 있던, 간과하던 일들에 대한 경고 메세지였다. 내 '일'은 진정 무엇인지 '가치'는 어떻게 표현되고 나타나는지에 대해 지금껏 오해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기술적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가깝게 느끼고 그 트렌드를 선도해야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IT는 주역(경영 주제)이 아니라 조역(도구)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성능 좋은 슈퍼 컴퓨터가 앞에 있으면 뭐하나? 그걸 써먹을 만한 알짜배기 로직/알고리즘/모델은 손 끝에서 연필 끝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오늘 했던 일이 내가 '가치를 만들어 낸' 일인지, 구글과 네이버에 있는 남의 지식을 '무단 도용'한 일인지, 시시덕대면서 습관적으로 '좋아요'를 누르고, 가십성 기사를 읽으며 시간을 소비하진 않았는지 반성해 볼 기회를 준 따끔한 이야기 <디지털 단식>

 

Fine. thyng.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