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R&D에서의 6개월
*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 주관적입니다. 제가 만난 연구원들과 이해관계자와의 경험은 일반화하기 어려운 다소 좁은 경험일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General Motors 연구소에서의 인턴 시절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했다.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KAIST 김진형 교수님 제자의 Amazon 인턴 생활 이야기에 동기부여를 얻었다.
@xthy 선진 기업에서 일하는 환경과 분위기를 직접 경험하신 분들이 이야기해 주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글이 나오면 알려주세요. 저도 열심히 RT해 드릴께요
— 김진형 (@profjkim) July 15, 2012
배경
- 석사과정 중 미국 Michigan주 Warren시에 위치한 General Motors(이하 GM)의 Technical Center R&D 연구소에서 인턴 연구원(공식명칭 Visitor Scholar) 생활을 경험하고 왔다.
- 내가 참여한 인턴십 프로그램은 GM에서 보통 선발하는 여름 인턴십 프로그램(여름방학 두 달 동안 진행. 보통 미국기업들의 인턴십 프로그램 형태)이 아닌, 비정규 인턴십 프로그램으로서(GM R&D와 대학교간 MOU와 BK21의 글로벌 인턴십을 통해 선발) 여름 인턴십 프로그램과 선발 및 진행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업무 형태나 연구 참여 방법은 거의 동일했다.
- 인턴 기간(2008년 2월-8월, 약 6개월)은 금융사태 바로 직전 시점으로 내가 있는 동안에는 GM의 회사 내외 분위기가 좋은 편이었다(2008년 3분기에 발생한 금융위기 후에는 GM내 구조조정, 정부지원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
- 인턴으로 근무했던 부서는 MSR(Manufacturing Systems Research) Lab.으로 주로 자동차 생산기술, 물류, 로봇, 시뮬레이션 등에 관련한 Micro-scope의 연구과제를 진행했고, 부서 구성원 대부분이 이공계 박사 출신이었다(기계공학, 수학, 산업공학, 통계학 등 전공).
- 인턴 기간 동안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하나는 GM의 사업부 구성원들과 co-work하고 지원할 수 있는 개발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별로 현업에서 발생할 법한 관심 문제를 선택해 자유롭게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였다.
연구/근무 환경
- 연구원 개인의 연구/사무 공간은 면적 5~6평 정도의 독립된 방으로 쾌적했다. 연구원 방마다 벽 전면에 대형 칠판(분필로 쓰는 블랙보드!)이 있어서 아이디어를 적거나 토의할 때 유용하게 썼다. 작은 부분이지만 참 맘에 든 것 중 하나.
- 인턴에게는 개인별 멘토(Senior 급 연구원)를 배정해주어 기본 생활 및 업무 적응을 도와주었다.
- 연구원들의 업무시간은 정확히 정해진 것은 아니고 회의와 일정따라 스스로 관리하는 형태였다. 나의 경우에는 8시~17시 근무를 했는데, 내 멘토나 오피스 메이트는 출퇴근 시간이 유연했다. 오후에 치과를 가거나 변호사를 만나거나 아들의 학교 행사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일찍 퇴근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하지만 유연하다는 의미가 일을 덜하거나 널널하게 했다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일해야 하는 시간인 40 시간은 모두가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고, 유연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악용하는 사람도 볼 수 없었다.
- 연구원의 성과로서 논문, 책을 쓰는 것을 높게 평가했고, 권장하는 분위기였다. 부서회의 때 각자의 성과에 대해 공유하며 논문 게재, 책 출판 결과를 칭찬하고 계획을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 연구원 인력 구성이 화려하다. 전직/겸직 교수인 연구원들도 많고, 유명 기술 프로젝트 참여자(3D CAD 1세대 엔지니어, Unix 개발 초기 참여자, 통계 패키지 R 개발 참여자 등), 학회/저널의 위원장 등 글로벌 TOP 클래스 수준의 사람들이 많았다.
- 연구원들 간 질문이나 토의가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부서가 다르더라도 '너의 전문분야에 대해서 질문이 있다, 이야기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면 굉장히 반가워하고 질문/고민 내용에 대해 아이디어나 피드백을 주는 등 적극적인 자세에 놀랐다.
- 분업의 체계가 명확했다. 연구원들은 자신의 전문분야 이상의 능력을 요구받지 않는다. 연구원들은 본인의 가정하에 생성한 모델이나 연구한 결과를 Prototype을 통해 제공해주면 그 내용과 효과의 가능성은 사업부에서 직접 확인하고 실제 시스템화 하거나 도입할 주체는 다시 정한다(GM R&D에서는 사업부에서 요청한 문제점에 대한 해법으로 Prototype 공식이든 S/W든을 제공하면 그들이 적합성을 판단한 후 GM내 IT 개발 부서 및 아웃소싱을 통하여 개발을 적용하는 형태로).
- 개발 프로젝트 진행 중에 사업부의 엔지니어, 부서장, 임원들을 만나 협업하고 일정 단계별 보고하는 기회가 있었고, 연구 프로젝트는 연구 멘토인 Senior 연구원과 함께 고민하고 토의하고 더불어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얻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 연구원들의 평균적 근속년수가 길었고 정년의 나이도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것 같았다(GM도 강성노조가 있는 회사였기에 더 그랬을수도). 근속은 평균 10년 이상이었기에 연구원들간 친밀도, 연구원의 전문성도 높았다. 내 멘토는 70이 가까워오는 나이였지만 열정적으로 연구했고, 50대 중반을 넘은 연구원들도 많았다.
- 인턴이었기에 연구원들의 정확한 급여나 복지혜택에 대해서 자세히 알수 없었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이자 글로벌 1위 회사에 걸맞는 대우라고 들었다(우리 IMF 사태 때 처럼, 2008년 금융사태 이 후에 GM의 경우에도 금전적 보상/복지혜택이 상당부분 재정리가 됐겠지만). 다만, 요즘 많은 스타트업들이 '신경쓰는' 점심식사는 제공되지 않았고 회사내 카페테리아도 훌륭한 수준은 아니었다(도시락을 싸오거나 외식하는 연구원들이 대부분이었음).
좋은 자극들과 배운점
- (적어도 엔지니어에게) 글로벌 공용어는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 '어눌한 영어'라는 것을 느꼈다. 원어민의 실력이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유려한 영어실력을 위한 노력보다는 내 전문성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게 더 중요함을 체득했다. 특히나 엔지니어나 연구원들은 의사소통이 조금 어렵더라도 Math Model, S/W Source Code 등 '공용어'처럼 서로 의미를 통할 수 있는 방법이 많기에 더욱 그렇지 않나 싶다.
- 공학을 전공하면서 '내가 40, 50대가 되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그 의문에 좋은 환경과 좋은 선례를 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이 후 취업할 회사를 선택하고, 이직할 때도 큰 도움을 주었다.
- 2008년 금융사태 때 GM 내부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고 이 때 많은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함께했던 '실력파' 연구원들은 현재 대부분 그 때보다 좋은 곳에서 교수, 종신연구원, 매니저로서 활약 중이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될 놈들은 된다'.
- GM R&D 내 Summer Intern 학생들이 모두 모이는 기회가 있었다. 서로 간단히 본인/연구분야 소개하고, 식사하는 자리였다. Summer Intern은 미국내 학교(Michigan Univ.가 가장 많았고, MIT, Stanford, UC Berkeley, CalTech, Purdue 등 화려했다) 석사, 박사과정 학생들이었고 심지어 나와 동갑(당시 만 24세)인데 이미 박사학위가 하나 있고, 두번째 박사학위 막바지인 학생도 있었다(<빅뱅이론>을 현실판 느낌). 자극의 폭탄을 맞았던 기억.
- 사실 석사과정 학생은 '전문가'라고 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은 풋내기이고 인턴은 뜨내기로 인식하여 많은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본인만의 영역을 갖고 있는 엔지니어, 연구원으로 인정하고 대우해줬다. 그 덕분에 '시간만 때우자'가 아니라 '뭐라도 해보자'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게 되고, '더 잘하고,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한다. 그들은 인턴들을 'Drive'하는 법을 알았다.
-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멘토 포함 4명에게 조언을 구하고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다들 Senior 연구원들이었고 개인 연구 업무가 있었음에도 언제나 적극적이고 진심으로 질문에 대답해주고 고민해줬던 기억이 깊게 남아있다.
- 미국문화권의 사람들은 칭찬을 잘한다. 칭찬이 흔하다(Good은 보통이고 Excellent, Great 나와줘야 어느정도 했나보다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칭찬은 큰 힘이고 동기부여다. 덕분에 (작지만) 여러 부분에 자신감을 많이 얻는 시간이었다.
- 인턴기간 동안에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휴가기간이나 휴일에 많이 여행하고, 많이 놀면서 미국을 체험하라고 조언을 엄청해줬다(휴가 전날 오후면 미국지도를 펼쳐놓고 돌아가면서 자기가 좋았던 여행지를 설명해주기도 했던). 그 덕에 '관광'이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미 중-동부 열차여행(Amtrak, 디트로이트,시카고, 클리블랜드,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워싱턴디씨, 뉴욕, 보스턴), 중-동부 자동차 횡단, 콜로라도 스키장등 값진 추억을 많이 쌓았다.
소회
Quora에서 ‘페이스북 인턴생활이 궁금해요’, ‘이번 여름에 실리콘 밸리에서 인턴 한 사람들은 누가있나요?’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시원시원하게 달리고, 실명으로 정리되고 공유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서는 겸손함을 중시하는 혹은 공유를 꺼려하는 문화 때문인지 주변에 지인이 없다면 이런 경험들을 접하기 쉽지 않다. 나 역시 인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안타까웠다.
엄청난 비밀이나 대단한 노하우는 없지만, 국외 기업/연구소/제조업/박사인력들에 대한 간접적 경험으로서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나저나 문득 4년 전 저 시절이 그립다.
Fine. thy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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