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매장에 가본적도 조립을 해본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친밀한 브랜드는 아니다. 내게 이케아는 보기보다는 저렴한 가격(그만큼 저렴한 품질), 모던한 디자인, 내 손으로 조립(그래서 좋거나 완전 싫거나)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가구 브랜드였다. 14년에 광명에 공식 매장이 들어선다는 뉴스에 호기심을 갖게되어 읽게 된 <이케아, 그 신화와 진실>

<이케아, 그 신화와 진실>에서 다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창업자인 잉바르 캄프라드 이야기
  • 이케아 창업 이야기
  • 이케아가 추구하는 가치, 성공 전략
  • 이케아의 불안요소

 

이케아의 얼굴,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

잉바르 캄프라드는 지독하게 검소하고, 기준이 명확한 '꼰대' 스타일 경영자이다. 거기에 북유럼의 디자인 철학과 이케아 표준, 품질을 강조하여 짧은시간 전세계 가구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하지만 잉바르 캄프라드는 젊은 시절 친 나치주의 운동에 참여했고,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상속 등 논란 중심에 있다. 이는 지금의 이케아가 기업공개를 꺼리고 내부의 이야기를 외부에 공개하는 기사, 책, 다큐 등을 지독히 싫어하는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 잉바르 캄프라드는 단순히 이케아의 얼굴일 뿐만 아니라 영혼이고 양심이다. 잉바르 캄프라드라는 이름은 누구나 아는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비전과 가치는 이케아의 생명줄이다. 이케아(IKEA)의 앞 두 자는 그의 이니셜에서 따왔고, 나머지 두 자는 그가 자란 스웨덴 남부 소나무 숲의 농장과 마을 이름, 엘름타뤼드(Elmtaryd)와 아군나뤼드(Agunnaryd)에서 따왔다.
  • 스웨덴의 경제지 <베칸스 아포레르>에 따르면 한때 캄프라드의 재산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능가했다고 한다. 또 2008년 <포춘>지는 캄프라드를 세계 7위의 부호라고 평가했다. 이케아는 자사의 소유주가 세계 최고 갑부라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자신들의 서민적이고 검소한 이미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케아가 비상장기업인 만큼 진실은 비밀의 장막에 가려 있다.
  •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발행하는 매체에 한 중역은 이렇게 답했다. 그가 한번은 일등석 타는 걸 허락 받으려고 잉바르 캄프라드에게 전화를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이코노미석이 다 팔렸고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설명했다. 캄프라드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며 말했다. "이케아에 일등석은 없습니다. 대신 자동차로 갈 수는 있을 거요." 그 중역은 택시를 타고 350마일을 여행했다. "이케아 주차장에 화려한 차는 없어요. 소위 삐까번쩍하다는 차는 없습니다." 일부 이케아 직원은 회사의 비계급적 이상에 부합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부를 은밀히 숨기는 법을 배웠다. "출근할 때 평범한 볼보를 몰고 집에서 개인적으로 차를 몰 때는 포르쉐를 타는 사람들을 알고 있어요."
  • 캄프라드는 자신이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할머니는 체코 치하에서 박해 받던 수데텐 독일인으로 친 독일/친 나치 성향이었다. 캄프라드는 젊은 시절 나치즘을 지지한 단체를 세우고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우상화한 페르 양달과 친한 친구였다. "젊었을 때 저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저는 나치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동료들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것은 실수였고 그 때 저는 어렸습니다. 하지만 50년 전 일이고 저만 그랬던 건 아닙니다."
  • 캄프라드 제국의 복잡한 구조는 주식시장 상장, 적대적 기업인수, 상속세 등의 위험으로부터 회사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이었다. 또한 교묘한 술수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그의 가족이 계속 회사를 소유할 수 있었다. 이케아가 판매하는 가구들과 달리 캄프라드의 비전은 분해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잉바르 캄프라드에 대한 소문들

  • 그는 가급적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스웨덴에서는 노인용 무임 승차권을 이용한다.
  • 그는 과일과 야채를 주로 오후에 시장에서 산다. 그 편이 더 싸기 때문이다.
  • 그는 호텔 냉장고에서 음료를 하나 마시면 대신할 것을 사러 슈퍼마켓에 간다.
  • 그는 티백을 재활용한다.
  • 그는 저녁 외식 비용으로 5파운드 미만을 지출한다.
  • 그는 호화 호텔에서 묵느니 차라리 차에서 잔다.
  • 그는 바지 뒷주머니에 커피 젓는 플라스틱 스푼을 갖고 다닌다.

 

이케아의 전략

조립형 플랫팩 가구(flat-pack furniture : 운반하기 좋도록 납작한 상자에 부품들을 넣어서 파는 조립식 가구), 엄격한 기준의 매장관리, 다양한 디자인, 낮은 가격, 대량생산으로 가구의 개념을 바꿨다. 가구를 주방용품 쇼핑하는듯한 기분으로 '가볍게' 고를 수 있게 만든 것이 이케아의 가장 큰 전략이자 수확이 아닐까?

  • 이케아의 신화는 우연하지만 중대한 발명에서 시작된다. 1950년대 초 이케아의 네 번째 직원 일리스 룬드그렌은 차 트렁크에 테이블을 집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급기야 그는 테이블 다리를 잘라냈고, 이렇게 해서 플랫팩 가구가 발명되었다. 이 발견은 엄청난 선적 공간의 낭비 없이 가구를 전 세계로 운송할 수 있음을 의미했고, 또한 가구 조립비 부분을 고객에게 떠넘길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 의미는 이케아가 물건을 아주 싸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제 가구가 대대로 물려받는 해묵은 감정의 짐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구가 일회용의 일시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플랫팩은 디자인의 역사와 소비에서 중대한 공헌을 했다. 디자인 분야가 제조, 유통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재료 구매에서 최종 사용자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규모의 경제 효과를 가능케 했다. 납작하고 평평하게 포장하고, 고객이 조립할 수 있도록 제품을 디자인함으로써 이케아는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 ... 이케아는 한 트럭에 더 많은 물품을 실을 수 있었고, 창고에 더 많은 제품을 쌓을 수 있었고, 운송 시 손상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제품을 만드는 데 재료와 노동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든다는 걸 고려한다면 플랫팩으로 유통 후 고객의 조립 과정인 노동력 부분은 공짜라는 의미다. 이로써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가구산업은 잉바르가 그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린 후 다시는 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
  • 회사 내부에서는 이케아가 사람들의 성생활에 유익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남녀평등의 현대 세계에서 남자들의 수렵채집 본능을 다시 일깨우기 때문이란다. 그런 남자의 본능이 가구를 조립하도록 이끌고 평상시 집에 있을 때와는 다른 방식, 좀 더 전통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케아에서 쇼핑하면서 스스로를 쓸모 있고 손재주 있다고 느끼는 것은 정말 사실이다. 당신은 그저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집을 위해 무언가 실질적인 일을 한다. 이케아는 우리의 손재주가 하찮다 해도 그 결과물에 뿌듯해할 여지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아이들 앞에서 빌리 책장을 조립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뛰어난 목수라는 환상에 빠진 채.
  • 이케아의 가격이 싼 또 다른 이유는 제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규모다. 규모의 경제가 가격을 마구 아래로 떨어뜨린다. 이케아의 베스트셀러인 작은 커피테이블 라크가 좋은 예다. 1990년 이케아의 약 24만 2000개의 라크 테이블을 만들어 25.70파운드에 판매했지만, 2004년에는 200만 개의 테이블을 생산해 겨우 9.90 파운드에 팔았다. 이케아는 절약되는 몫을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다른 대부분의 회사와 다르다. 당신은 개개 상품에 대한 이케아의 수익이 아주 적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이윤 마진은 엄청나다. 이케아 상품 정가의 17-18퍼센트가 순이익이다. 대부분의 경쟁사들이 한자리 수의 중간 이윤을 올리는 걸 생각해보면 믿기 어려운 정도다.
  • 이케아는 생산시설을 전 세계 여러 나라(폴란드, 불가리아, 중국, 러시아, 스웨덴, 헝가리)에 분산시켜 놓았다. 제품이 동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 이케아의 공급망은 고도로 기계화되어 있다. 이케아는 창고 자동화의 선구자로, 창고 운영에 로봇을 도입한 최초의 회사다. ... 2002년 설립된 이케아 철도(IKEA Rail)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전역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해 선로를 건설하고 기차를 생산하는 회사다. ... 이케아가 처음 목재의 귀중한 공급원으로 러시아에 주목했을 때 러시아의 철도는 이케아가 제품을 회수하기에 여건이 썩 좋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케아는 자사의 트럭이 목재를 실어 나를 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 민주적 디자인에 대한 이케아의 야심에는 한계가 없는 듯하다. 1990년대 후반 이케아는 조립식 주택을 실험했다. 이 시험 프로그램은 보클록(BoKlok)이라고 불렸는데 스웨덴어로 '현명한 생활'이라는 뜻이다. ... 2000년 이케아는 스칸디나비아 4개국에 1000개 이상의 조립식 주택을 지으며 디자인 민주화를 논리적으로 매듭지었다. 그리고 2008년 다수를 위한 집을 제공하기 위한 이케아랜드의 93개 플랫팩 주택 중 첫 번째 집이 영국에 선을 보였다.
  • 이케아의 이동 경로는 우리가 적어간 구입 목록만 사는 걸 불가능하게 만든다. 아주 절제력 있는 쇼핑객이라도 이케아에 전시되어 있는 걸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갖고 싶어했는지도 몰랐던 물건을 구입하려는 유혹을 떨쳐내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것은 영리한 판매기술로 사람들은 별로 강요 받는다는 느낌 없이 전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을 사도록 교묘히 조작 당한다.

이케아가 추구하는 가치

우리는 멋져 보이길 원하지만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 이케아 이전의 가구란 조부모와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집의 살림살이를 장만하려고 평생 동안 저축하곤 했다. 소파 하나도 죽을 때까지 쓰기 위해 샀다. 하지만 이제 가구는 일회용의 일시적인 것이 되었다. 이케아는 우리에게 자기표현의 기회를 준 브랜드였다.
  • 이케아를 좋아하고 의지하든, 싫어하고 기피하든, 우리는 점점 더 그곳을 자주 찾는다. 이케아는 반 마케팅 브랜드다. 겉보기에 이케아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케아는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고 대신 말해준다.
  • 블랙앤드데커(Black&Decker)사는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사람들에게 "당신의 개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독일을 제외하고 모든 나라 사람들이 "집."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사람들은 그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 이케아 이야기는 정확한 고품질의 시계 대신 일회용 시계로 업계에 혁명을 일으켰던 스와치(Swatch)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스위스의 모든 시계 제조업자들은 초창기에 스와치와의 거래를 거절했다. 스와치가 업계에 변혁을 가져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스와치는 업계의 기존 가격 담합을 깨야 했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그것을 우회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스와치와 이케아의 유사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케아에서처럼 스와치의 성공에서도 디자인은 핵심 역할을 했다.

 

이케아의 불안요소

이케아는 아직 베일에 쌓여있는 조직이다. 비상장기업에 지배구조도 알기 어려운 복잡하게 유지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경영 세습이 이루어지는 이 때에 투명한 기업공개와 구조조정으로(인원 감축이 아니라 말그대로 이케아 그룹 내 구조를 변화) 기업과 경영자의 진정성을 나타내야한다. 특히나 세계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지속성장하기 위해서는 제품혁신보다 기업공개와 사회적 책임을 위한 장치를 준비하는 모습들이 필요하다.

  • 영국 크로이던에 있는 이케아 매장에서 나는 노란 셔츠를 입고 싱글대는 직원에게 카메라를 빼앗겼다. 그는 매장에서 사진 촬영을 하려면 본사의 특별 서면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케아 직원, 이케아와 가까운 사람들을 수업이 인터뷰했지만 모두 남몰래 속삭이듯, 오프더레코드로 진행하기를 원했다. 스웨덴의 한 경제부 기자는 스웨덴인들을 인터뷰할 때는 책이 아니라 신문기사를 쓰고 있다고 말하라고 충고했다.
  • 이케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언어를 말하게 하는 것이 순종을 유도하는 교묘한 기법이라고 주장한다. RCA의 조 커는 <가디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스웨덴 말로 되어있는 이케아 제품명을 따라 함으로써 당신은 이케아의 전도사가 됩니다. 예를 들어 경찰의 심문 기법을 보면, 상대의 의지를 꺾는 방법 중 하나가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언어로 말하도록 시키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게에 가서 에그 맥 머핀이나 스키니 그랜드 라테, 빌리 책장을 주문한다면 당신은 그들 손에 놀아나는 겁니다."
  • 반 브랜드 운동가들이 이케아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특이할 만하다. 연간 5억 8000만 명의 이케아 고객과 그들의 목재가구에 대한 허기진 탐욕은 보르네오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산림에는 몹시 위협적이다. 마찬가지로 이케아가 저가정책으로 경영이 가능한 여러 방법 중에는 라오스, 베트남, 중국, 인도 같은 빈곤국가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스웨덴 가구회사가 대기업과 글로벌 브랜드에 적대적인 이들에게 표적이 되는 이유로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 전 세계 이케아 고객의 평균 연령은 현재 42세다. 일부 시장에서는 이보다 더 많다. 앞으로 이케아는 중년층 이상의 고객들을 계속 끌어들일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나이 많은 고객일수록 돈이 더 많으며, 오래가는 가구를 사고 싶어하고, 가게에서 상응하는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 이케아에게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이며 아마도 시장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최초의 경우일 것이다. 이 점은 디자이너들에게도 당면과제다. 조립방법도 더 나이 많은 세대를 위해 쉬워져야 한다. 부품들은 육각렌치를 이용해 끼워 돌리는 것보다는 서로 끼우기만 하면 딸깍 하며 단단히 고정되는 손쉬운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이미 억만장자인 캄프라드의 세 아들들은 아버지의 특성을 물려받은 듯 보인다. 맏아들인 페테르는 이케아 전체 회사들의 모 그룹인 잉크바(Ingkva)의 이사회에 앉아 있으며 가장 강력한 후계자로 손꼽힌다. 그의 부하직원으로부터 그가 선물로 꽃다발보다는 씨앗 봉지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더 싸기 때문이다. 더불어 H&M 옷을 주로 사고, 중고품을 사기 위해 벼룩시장 들르는 것을 좋아한다.

숫자로 본 이케아

  • 아바(ABBA)와 볼보(VOLVO)를 제치고 스웨덴의 최고 유명 수출품 자리를 차지
  • 연간 5억 8000만 명 이상이 40여 개국 330여 개의 이케아 매장을 방문하며, 160킬로미터를 운전해 찾아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 영국에서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사람보다 이케아에 가는 사람이 두 배 이상 많을 때도 있다.
  • 유럽인의 10퍼센트가 이케아 침대에서 잉태된다고 한다(추정치).
  • 2011년 이케아는 100억 달러의 가치로 평가되며 글로벌 31위(2011년)를 기록했다(이케아는 40위 안에 든 단 여덟 개의 유럽 브랜드 중 하나).
  • 이케아 고객은 1년에 평균 3.5회 매장을 방문한다.
  • 1978년부터 30년 동안 2800만 개의 빌리 책장이 팔렸다.
  • 이케아 고객의 평균 연령은 42세다.
  • 이케아 고객의 60퍼센트는 여성이다.
  • 이케아 제품은 1만 종이 넘는다.
  • 매일 150만 명의 고객, 한 해에 5억8000만 명의 고객이 이케아를 찾는다.
  • 회계년도 2010년 기준 이케아의 매출은 235억 유로다.
  • 이케아의 직원은 2008년에 약 12만 8000명이었다.
  • 이케아 매출의 16퍼센트는 독일에서 생긴다. 이케아 제품의 22퍼센트가 중국에서 팔린다.
  • 2008년 이케아 카탈로그 1억9000만 부가 55가지 판과 27개 언어로 인쇄되었다.
  • 현재 40여 개국에 330여 개의 이케아 매장이 있다.

 

소회

이케아는 디자인 회사나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 처럼 자유롭고 발랄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적어도 내게는), 실제 속을 들여다보니 '재벌' 기업에 딱딱한 '천상' 제조기업이었다. <이케아, 그 신화와 진실>은 이케아의 '불편한 진실'도 싣고 있지만 반대로 성공 스토리, 비결에 대한 내용도 탄탄하게 정리했다.심혈을 기울인 기업 분석 보고서, 르포 기사를  잘 정리한 느낌의 <이케아, 그 신화와 진실>. 기업도, 제품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

기업의 속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보고나면 배우는 것,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환상이 깨져서인지 허탈한 마음이 생긴다.

 

Fine. thy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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