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만난 책 중 여운이 가장 깊고, 인상적인 문구에 Flag를 가장 많이 달게 된 책 <거의 모든것의 경제학>.

저자인 김동조(hubris)님의 블로그 Economics of almost everything(책 제목과 동명)에서도 느꼈지만 그의 글들은 매력적이고, 겁이 없고, 눈치도 안본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자 쓴 글들이 아니다. 정치부터 IT, 자녀들의 교육까지 넓은 소재에 대해 특별한 본인만의 색과 통찰을 표현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블로그를 찾았고, 글에 공감했고, 그 덕에 유명세를 얻게되고 책 출간까지 하게됐다(<거의 모든것의 경제학> 덕분에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제목만 봐서는 '경제학'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돈'이나 '재테크'가 떠오르지만 책에서 다룬 것은 그것과 전혀 다르다. 오히려 사회심리나 의사결정의 분류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거의 모든것의 경제학>은 참 시원하고 통쾌하다. '경제학' 프레임을 통해 오늘 날 허영과 무지에 찌든 대한민국 국민들을 사정없이 '깠다'(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나 스스로도 엄청 까였다고 생각). 그 자신만의 '편견'에 가득찬 문체로 "전략적일 수 없으면 철학적이기라도 할 것"을 외친다.

그의 의지와 논리를 볼 수 있는 서문. 포스철철.

나는 편견으로 가득 찬 책을 쓰고 싶었다. 누가 말하든 상관없고 무얼 말하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랑말랑한 책이 아니라, 상식에 도전하고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그런 책을 내고 싶었다. 내가 그런 책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내가 그런 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상식인 생각도 다른 누구에게는 의견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의견은 모두 편견일 수 있다. 따라서 편견으로 가득 찬 책이란 결국 자기 목소리로 가득 찬 책일 것이다. 하지만 설득력 없이 자기 목소리로만 가득 찬 책은 불편하고 불쾌하다. 설득력을 확보한 편견은 불편함은 줄 수 있더라도 불쾌감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 의견은 작은 목소리라고 해서 서서히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의견이 상식으로 수렴하는 과정에 이바지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나의 주장이 모두 옳을 리 없다. 경제학적인 관점이나 시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닐것이며, 전략적 사고를 일상의 모든 일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회적 사안을 분석하고 일상적 현안에 대응하는 데 경제학적 관점과 전략적 사고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나처럼 늘 시장을 예측하고 그 결과에 따라 대응해야 하는 트레이더가 아니라도 이런 방법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방법론에 신뢰가 있고, 신뢰에 노력이 더해진다면, 설령 예측이 틀리고 대응이 서툴러 결과가 나빠도 상처 입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트레이딩으로 돈을 버는 것뿐 아니라, 대학을 가는 것이든 직업을 고르는 것이든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든 말이다.

 

 

저자는 '경제학'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수도 있는' 우리 주변 일상 소재들에 대해 철저히 본인만의 '편견'으로 상황을 평가하고 방법을 제안한다. 꽤 신선하다.

이에 관한 그의 의견이 담긴 문구들 몇 가지,

경제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큰 실익은 여느 사람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볼 수 있는 능력을 통해 현상을 이해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을 이해하게 되면, 왜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지 않을 상대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자식을 부모가 걱정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매몰 비용'을 이해하게 되면, 왜 아무리 오랫동안 사귄 애인도 괜찮은 배우자가 될 수 없다고 판명되면 헤어져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즉 거부하고 싶은 사회적 통념 가운데 일부가 실은 시간을 거쳐 살아남은 지혜라는 것을, 습관적으로 받아들인 대중의 어떤 상식이 실은 오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통념' 중에서 '지혜'를 골라내고 '상식' 중에서 '오해'를 걷어내는 작업을 하는 데 경제학만큼 힘이 센 것은 거의 없다.

경제학자들은 논란이 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일반 대중과 관점이나 시각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대신,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성매매를 나쁜 것이라고 말하기 일쑤지만, 현실에서 성매매는 공공연한 일이다. 마약 복용이나 낙태 같은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나쁘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경제학은 전면 자유화와 전면 금지 그리고 규제 사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길을 찾는다.

흔히 사람들은 전략적이고 철학적인 선택을 하길 바란다. 전략적이고 철학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반응은 예측하기 어렵고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는다면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목표를 뚜렷하게 세워 어떤 일을 확실히 추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왕좌왕하며 정확한 방법을 모른 채 때를 놓치는 사람도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하려는 이유는 어떤 선택이나 의사 결정을 할 때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현명한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지적인 능력과 기본 정보를 갖추고, 좋은 조언이나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스승과 친구를 만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멘토'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최고의 멘토는 전략적인 조언을 주기도 하지만 철학적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공감은 한 방향일 수 있지만, 철학적 공감은 쌍방향일 수밖에 없다.

 

 

민감하고, 흥미롭고, 재미난 소재들에 대해 저자의 '편견'을 풀었다. 필사한 내용 중 줄이고 줄여도 꽤 많다. 그 중에 '결혼의 경제학'은 꼭 읽어보길 권한다.

잘못된 인센티브: 미성년자 강간범은 사형 시켜야 하는가?

  • 미성년자 강간 사건에 대해 SNS에는 관련자들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분노에 찬 의견들이 많이 올라왔다. 그러나 살인이 아닌 범죄에 대해서 사형을 실행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엄청난 부작용을 낳기 쉽다. 이렇게 되면 살인까지 가지 않았을 범죄자도 들키고 잡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죽일 인센티브가 커지기 때문이다.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정책 수립에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대중의 여론에 휩쓸려 잘못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다. 제임스 해크만의 말처럼, 나쁜 인센티브는 없느니만 못하다. 우리 근대사를 보면 정권이 정치범에게 사법 살인을 저지른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식의 사형 집행은 사실상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과 다를 바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할 수 없다.

 

성매매 금지: 성매매나 마약복용이나 똑같다?

  • 성을 사고파는 행위는 마약 복용과 많은 면에서 다르다. 성을 사고파는 행위를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의 효용이 증가하는 것은 마약 거래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통해 국가 전체의 효용이나 생산성이 감소하지는 않는다. 물론 생산성이 떨어질 정도로 성행위가 빈번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이런 문제는 결혼을 통한 성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떠오른다. 성을 파는 행위에 대해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폭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을 할 수 있지만, 그런 폭력이 이유라면 성매매 자체를 금지시킬 것이 아니라 성매매 노동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나 개인을 제재하는 것이 옳다.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에 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행동에도 사회적 구조가 작동할 수 있고 계급적 불평등이 작용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로 계약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 성매매를 나쁘게 여기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대개의 성매매가 갖고 있는 낮은 가격이라는 속성 때문일 것이다. 정의상의 성매매는 누구와 하건 얼마를 받건 상관없이 성을 매개로 돈을 주고받으면 성립한다. 그런데 값이 싼 성매매와 비싼 성매매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생각은 이중적이다. 즉 성매매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일반적을 그것이 싸게 이루어지기 때문이지, 만약 비싼 성매매라면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는 달라진다. (장쯔이의 10억이 넘는 하룻밤 성매매 대가에 대한 추문)
  • 성매매 금지에 따른 함수관계(성을 파는 입장에서는 낮은 가격에라도 팔고 싶지만 팔기 어렵고, 성을 사는 입장에서는 위험성을 감안한 더 높은 가격에 살 수 밖에 없음) 과거 미국에서 금주법이 실시된 현상과 일치한다. 술을 사고파는 사람들 간에 이익을 취한 쪽은 갱단과 부패한 경찰이었다. ... 성매매가 금지된 상태에서 이익을 취하는 쪽도 결국은 어둠의 세력과 부패한 공권력일 가능성이 높다. 나라와 시대는 달라도 인센티브의 구조가 거의 같고, 성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술에 대한 것보다 결코 약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은 비혼 성관계의 증가뿐이다.

 

교육: 정책, 반값 등록금, 내 아이의 성적 향상

  • 높은 생산성을 지향하면 할 수록, 경제의 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결국 인적 자본 투자의 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 계층의 교육 기회가 낮아지면 소득 격차는 결코 줄어들 수 없다. 소득 불평등 문제를 풀어가는 근원적인 정책으로서 앞으로 교육 정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개혁 정책이 의료보험과 금융 개혁을 넘어 교육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 교육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인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높은 사회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경제의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그 사회의 소득 불평등은 교육 수준에 따라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하면,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잘 이루어지면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극복할 수 있다.
  • 대학 등록금이 이렇게 비싸다 보니 정당의 '반값 등록금' 공약은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다. 사회 운동 차원에서 대학에 등록금을 내리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도 생각해봄 직하다. 하지만 그것이 자동차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든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이든 가격을 올릴 이유가 있는데도 사회적인 압력 때문에 가격을 낮춰야 한다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질을 낮추거나 양을 줄이는 것이다. 사회적 압력 때문에 등록금을 내린 많은 대학이 수업 일수를 줄여서 대학생들이 예년보다 빨리 방학을 맞게 된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부작용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재정을 풀어 모든 대학의 등록금을 절반 수준으로 내리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정책은 효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다른 복지 정책에 비해서 우선적이며 시급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생들에게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좋은 국공립 대학에 대한 지원을 늘려 학교의 수준은 높이되 등록금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할 터다.
  • 대학 등록금은 학교의 수준과 낮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즉 좋은 학교의 등록금이 특별히 높지는 않다. 하지만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의 질은 교육의 수준, 학교 교육의 인프라, 취업률, 졸업생으로 연결되는 만족도 등을 고려했을 때 명문 대학이 월등히 높다. 가격은 거의 비슷한데 서비스의 수준인 가치는 훨씬 높다 보니, 사람들이 명문 대학을 선호하는 걸 막기란 사실상 어렵다. 그런 경쟁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시장의 기능을 왜곡하고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에, 국가로서는 경쟁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 본인이 공부를 잘해 의대에 가면 자연스럽게 동기생과 커플이 되어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를 잘한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힘이다. 통계적으로도 의사가 되는 순간 상위 소득 1퍼센트에 들어갈 가능성은 20퍼센트가 넘는다. 예전과 달리, 남자 의사가 여자 의사와 결혼하는 추세가 높아진 게 이유 없이 새긴 현상은 아니다. 아무리 부잣집 딸을 만나도 의사인 여자를 만나는 것보다 여러 면에서 더 낫기는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이다. 의사인 부인이 30살부터 60살까지 해마다 1억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이만한 현금 흐름과 동일한 금액을 상속받으려면 이자를 감안했을 때 30억 원이 훨씬 넘는 금액을 상속받아야 한다. 자녀가 두 명 있다고 가정하고 상속세율을 감안하면, 부모가 최소 100억 원 이상의 상속 가능한 재산이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로운 사람, 특히 자신보다 여러 면에서 나은 사람을 사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당 노동 가치가 큰 사람을 친구로 만들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직장과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 매우 제한된 자원인 시간을 배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지간한 인센티브가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엄두를 내기 어렵다. 결국 배우자만큼은 아니어도 친구의 가치 또한 대체로 자신의 가치로 수렴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시간의 가치가 낮고 금전적 부담이 적은 학창 시절에 좋은 친구를 사귀어두면 추억이란 자산을 공유하고 좋은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으로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는 사람들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 성적은 지능보다 동기(자발성)와 더 강한 관계가 있는 함수이다. … 여러 리서치를 보면 높은 임금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인성적 특성이고, 그 다음이 학력 평가 점수이며, 가장 상관이 없는 것이 지능이었다. … 연구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지능보다 자발적인 학습 동기 같은 인지적 특성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더 좋은 성적을 얻게 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길게 보면 이런 인지적 특성의 개발은 더 많은 임금이라는 사회적 성공과 연결된다. 이제 우리는 왜 집에 책이 많은 것은 성적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지만, 책을 읽어주는 행위 자체는 성적과 별로 상관관계가 없는지 추론할 수 있다.

 

은퇴와 기업이 원하는 인력: 우울한 대한민국에서의 정년

  •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식적인 정년은 60살이다. 미국의 공식적인 정년은 65살이다. 미국의 정년이 더 늦다. 그러나 정년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의 한계치일 뿐이다. 실제 은퇴는 미국이 더 빠르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 첫째, 미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에 비해 일보다 여가를 더 선호한다. 일본 사람들은 은퇴하고 쉴 때를 직장에서 일할 때보다 더 행복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사회적으로 그런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 둘째, 경제학적으로 보면 공식적인 은퇴 연령이 늦을수록 조기 은퇴의 편익은 더 크다. 즉 미국의 정년은 65살이므로 60살이 정년인 일본 사람들보다 조기에 은퇴할 인센티브가 더 높다. 현가로 할인해서 받는 조기 은퇴의 편익이 더 높게 계산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사회 구조의 변화가 적고, 기술 수준이 몇 십 년 동안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루어진 기술 진보의 대부분은 내부적인 성취였다. 이런 사회에서는 고령자의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즉 미국과 일본은 고령자에게 관대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인적 자본이 필요한 셈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박찬호와 송진우가 잘 던질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존재가 팀 승리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계속 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 기업이 기술 진보에 적응할 수 있는 인력을 요구할 때, 기술 진보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영업으로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적은 자본과 낮은 기술 수준으로도 창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자영업의 수익률은 감소하게 되고, 낮은 수익률의 자영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정부로서도 부담이 된다. 사실상의 반 실업 상태인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럴 때 기술 진보에 적응할 수 있는 인적 자본 투자에 힘쓰는 한편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를 아울러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 인적 자본 투자의 경로는 개인에게 그 책임이 일임되어 있을 때가 많아 부담이 너무 크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투자 수준은 높고 개인의 소득은 제한되어 있어서 제대로 된 노후 대비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활용해 실업 급여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혼의 경제학: 누구를 만나야 할까, 상대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

  • 결혼은 한 번밖에 못 한다는 것 즉 배우자를 딱 한 명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건 인간의 행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첫째, 자신의 진짜 선호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든 아니면 주변의 강요이든, 결혼을 앞둔 사람은 누구나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 깊게 생각하게 된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파혼에 이르는 일이 많은 것은 이 마지막 결정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둘째, 자신이 지닌 가치 이상의 상대를 선택하기는 매우 어렵다. 자기가 한 명만 선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선택하는 대상 또한 한 명밖에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최선을 다해서 좋은 배우자를 찾으려 하고 그런 노력이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는데, 어느 한쪽만 이익을 보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 좋은 학교에 갈 일도, 더 좋은 회사로 옮길 일도, 더 젊어질 일도,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더 올라갈 일도 없다면, 그때가 결혼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인 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더 좋은 학교를 다닐 노력도, 더 좋은 회사로 옮길 노력도, 더 젊어지거나 예뻐질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결혼을 안 하는 자식을 보면 화가 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흔히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하게 된다. 돈이든 지위든 외모든 지적 능력이든, 그것이 판명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많은 이성을 접할수록 자기가 만날 수 있는, 자기가 결혼할 수 있는 상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빨리 깨달을 수 있다. 작가 김수현은 한 인터뷰에서 "결혼은 두 집안을 천칭으로 달아 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능력보다 집안 배경을 너무 앞세우는 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결혼의 경제학'과 크게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 이 사랑이 과연 마지막 사랑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현재의 사랑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아울러 상대가 정말 자신이 생각한 그 사람이 맞는지 끊임없이 탐색하게 만든다.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의심 없는 사람을 하는 쪽이 열위에 놓인 쪽일 것이란 의혹을 받기 쉽다. 결혼이라는 선택을 앞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결혼 제도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왜곡하기도 한다. 인간의 집요한 의심은 심지어 결혼을 눈앞에 둔 시점까지도 이어진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싸우고 파혼하는 커플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달리 감정 소모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치밀한 검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검증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게 만든다. 그 검증 과정에서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결혼 준비로 말미암은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에서 나온 예외적인 모습일 뿐이란 낙관과 감추어져 있던 그 사람의 실상이 밝혀지는 과정이란 비관, 진실은 근거 없는 낙관보다는 팩트에 근거한 비관 쪽에 가깝다.
  • 인생은 단 한번뿐이고, 선택의 여지는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함량이 모자라는 사람을 자꾸 만나보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깨닫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지 사랑과 결혼의 상대뿐 아니라, 오래 교유하며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나 동료를 사귈 때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자신의 객관적인 한계치를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은 일이고, 전혀 엉뚱한 상대에게 차이는 상황도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과 취향 그리고 자기의 디테일 한 약점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조금이라도 발전할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상대를 차는 소개팅은 시간 낭비에 가까운 나쁜 소개팅이고, 자기가 차이는 소개팅은 자신의 한계치를 알려주는 좋은 소개팅이다.
  • 상대편 부모가 자기를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분 나쁘고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상대와 자기가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했다면 더욱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상대편 부모의 거부감은 적어도 그쪽의 관점에서는 이쪽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이쪽으로서는 괜찮은 상대를 골랐다는 뜻이 된다. … 따라서 자신이 결혼하고 싶은 상대의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는 분위기라면, 오히려 기꺼운 마음으로 그들을 사로잡을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 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바람직한 자세다.
  • 종교나 출신 지역 또는 나이나 궁합 따위 상대편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아주 다양하고 복잡해서 마치 그것이 본질인 듯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남편감으로 소개한 남자가 명문 대학 출신의 의사일 때, 남자의 종교나 출신 지역을 이유로 상대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반대하더라도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는 정도에 그칠 뿐 엄청난 적극성을 보이기는 어렵다. 명문 대학 출신의 의사나 검사 또는 판사인 남자(혹은 재벌 집안의 딸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서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는 부모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모습과 태도에 실망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런 상대의 모습 또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진짜 모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온한 일상이 아닌 그런 비상 상황에서 나온 모습이야 말로 그 사람의 진솔한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편이 경제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그럴 만하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지는 이쪽에 달려 있다. 그 결정이 바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그런 과정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요구를 하는 것과 받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상대편 또한 일생에 한 번뿐인 대사를 앞두고 온몸과 마음으로 내린 결단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소중한 것은 저쪽에게도 소중하기 때문에, 상대편이 요구하는 것 자체를 원천 봉쇄할 권리는 없다. … 따라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받아들이되, 받아들일 수 없다면 예의를 갖춰 거절하면 된다. 이쪽이 예의를 갖춰 거절했는데 저쪽에서 막무가내로 나오면 나쁜 시그널이다. 그런 일을 겪게 되면 결혼은 깨지기 쉽다. 이런 과정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불필요하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결혼 전에 상대의 진짜 모습과 가치를 알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 결혼에 대해서도 이 매몰 비용 개념은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얼마의 시간을 들여 사랑하고 얼마의 돈을 들여 결혼을 준비했건,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해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 결혼은 접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그 삶을 위해 쓴 돈과 시간 그리고 감정과 눈물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삶을 그 사람과 함께해서 과연 행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 사회가 예전의 윤리적 잣대로 변화된 가족 형태나 성 문화를 판단하고 비판하면 거기에 사는 구성원 개인의 행복지수는 떨어지게 된다. 개인의 입장에서 거대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일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반면, 지킬 수 없는 윤리적 규범은 불필요한 죄의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평균 결혼 연령이 35살 가까운 사회에서 그 시기까지 혼전 성관계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윤리나 종교 규범으로 다수에게 강제하면 불필요한 위선과 긴장이 팽배하게 된다.

 

진로: 직업 선택과 하고 싶은/잘하는/해야 하는 일

  • 사람들이 직업을 고를 때 득실 계산의 핵심은 적성(소질)과 돈(금전적 보상)일 것이다. 직업에서 적성이나 소질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적성이 맞지 않는 일은 잘하기 어렵고, 설령 잘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행복을 맛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성에 따라 직업을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적성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급여가 낮고, 사회적 지위가 낮으며,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직업이 적성에 맞는 사람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순순히 자신의 적성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을 확률이 높다. 적성에 맞지만 금전적 보상이 적은 일과 적성이 많지 않지만 금전적 보상이 많은 일 가운데 많은 사람이 후자를 택한다. 금전적 보상에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 못지 않은 즐거움이 따르기 때문에 적성 대신 돈을 택한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의사나 변호사 또는 금융계에서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신의 직업에 큰 불만이 없는 사람이 많다. 일은 일이고, 적성과 취미는 직업 밖에서 찾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꽤 있다. 적성에 맞으면 취미로 즐겨도 될 일을 꼭 직업으로 삼아야 인생이 행복한 것은 아닐 테니 그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 비단 직업이 아니더라도, 인생에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사람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그 사이에서 고민하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고민할 이유가 별로 없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은 잊고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다. 의사로서 가족을 부양할 수밖에 없다면, 하고 싶은 일이 사진작가이고 재능이 있는 쪽은 가수라고 해도 그런 일에 미련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꾸 한눈을 팔면 의사로서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미련이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얼른 돈을 벌어 언젠가 사진과 노래를 해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고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 가운데는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과연 그것이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인지 자문해보는 것이 좋다.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가수나 배우처럼 단지 그 일이 화려하고 근사해 보이기 때문은 아닌지,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이라면 스스로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만약 시장에서 준엄한 평가를 받을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면 그것이 정말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맞는지 냉정하게 자문해보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볼 때 그것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면 이미 그것을 웬만큼 잘하고 있어야 정상이지 않을까? 그것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대하는 최소한의 자세일 것이다. 그런 자세 없이는 사람들이 서로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일을 남보다 뛰어나게 잘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은 '잘할 수 있는 일'에 깊게 몰입할 수 있고, 몰입하면 더 잘하게 되고, 더 잘하면 더 인정받고 보상받는 선 순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 일이 반사회적이고 비 경제적인 것이 아닌 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몰입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부모에게도 훨씬 좋을 것이다.
  • 박지성이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을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간 것은 가역성을 넓힌 선택이다. 설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박지성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급여나 직급도 높아지면 좋겠지만, 가역성이 넓어지는 선택을 하는 게 직장의 선택에서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구직자들이 삼성 같은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상당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시가 총액 규모에서 다른 회사들을 압도할 뿐 아니라, 가역성이라는 면에서도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넓기 때문이다.

 

 

소회

<거의 모든것의 경제학>은 추석 연휴 때 오가는 기차에서 읽었는데 리뷰가 참 늦었다(필사할 내용도 많아서). 이 책을 요즘 주변 여럿에게 추천하고 있는데 읽고나서 단순히 '좋았다'의 느낌을 넘어 내 가치판단, 선택기준, 의사결정요인이 살짝이지만 흔들리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게 '도끼'였다(책은 도끼다).

평소 이런 우스갯 소리를 하곤 한다. '교통공학 박사인 분이 들어서는 길마다 막히고, 대기행렬이론 박사인 분이 서는 줄마다 오래걸리는게 현실이다. 이론과 실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점쟁이가 아니기 때문에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믿을 수 있고 알고 있는, 의사결정 체계/이론/방법론이 굳건하다면 선택과 결정에 무게가 더해지고 나아가 삶 자체에 자신감과 재미가 커지지 않을까?

엔지니어로서 매사에 '정의'를 내리려고 하고, 모든 일의 '단계'를 정리하려하고, '결론'을 내려고 하는 '습관'을 떨치려 애쓴적도 많다(주변에서 '공대생 냄새'난다는 표현을 들으며). 하지만, 나만의 그 '편견'과 '철학'이 있어야 함을 <거의 모든것의 경제학>을 통해 더 절절하게 깨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강력 추천!

 

*추가
감사하게도 저자 김동조 님께서 리뷰를 트위터에서 소개 해주셨다. 이럴 때 참 기분이 좋다!

 

Fine. thy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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