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조우석 저)
명사들의 서재를 소개하고, 그들이 추천하는 책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 요즘 참 많다. 이전 포스트 <지식인의 서재>에서도 이에 대해서 언급했었다.
비슷한 포맷이라 질릴만도한데 내가 평소 호감있던 명사가 어떤 책을 본인 인생의 책으로 꼽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욕심에 자꾸 그 '지겨움'에 손이 간다. (<책은 도끼다>, <밸런스 독서법>, <지식인의 서재> 모두 비슷한 류였는데도 말이다!)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12명의 명사들. 하나같이 핫한 인물들이다(책에서 정치색을 찾고 싶진 않지만 여성중앙에서 주도한 인터뷰라서 그런지 인터뷰에 참여한 '보수' 인사들에 비해 '진보'인사들은 보이질 않음).
- 광고인 박웅현
- 사진가 윤광준
- 가수, 화가 조영남
-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 공간 디자이너 마영범 (제일 좋았던 인터뷰이!)
- 수학자 강석진
- 전 국회의원,발행인 홍정욱
- PD 송창의
- 배우,작가 차인표
- 만화가 이원복
- 영화인 김동호
- 화가 이왈종
기록해 두고 싶었던 인터뷰이들의 코멘트들과 그들의 추천 책들 일부를 정리해봤다.
박웅현
2010년 입사 시험 때 제가 낸 문제는 글쓰기인데, 그 해 8월에 보도된 한 가슴 아픈 신문 기사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한 외고생이 자살했어요. 공부하라고 닦달하던 부모가 원하는 좋은 성적이 나온 직후였습니다. 학생은 '이젠 됐어?'라는 네 글자만을 종이에 남긴 채 죽고 말았습니다. 시험 문제는 이 이야기를 잘 설명해준 뒤 '유서의 본문을 A4 용지 한 매로 완성하라'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개선문>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 니크소 카잔챠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윤광준
제가 적응 잘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속으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죠. 직장이란 게 부장 다음에 국장 승진이 전부인데, 그런데 목맨 선배 중 '저분이 내 삶의 모델이다' 싶은 이를 본 적이 없거든요. 멋져 보이질 않는거죠. 실은 정형화된 삶의 방식이 끔찍하게 보였어요.
북해 탐사 유조선에 탔던 그는 배가 불에 타자 갑판에 홀로 섰어요. 선택은 두 가지였죠. 난간을 붙잡은 채 배와 함께 침몰하거나 칠흑 같은 바다에 몸을 던져 삶을 도모하는 건데, 그럴 경우 1%의 생존 가능성은 있었고요. 누구나 '난 뛰어들 거야'라고 장담하겠지만, 막상 그게 어렵지요. 차가운 물이나 익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죠. 그게 '학습된 공포'인데, 당시 마음을 굳게 먹은 저는 변화해야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40대 이상 중년들은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어요. 남자들의 경우 대부분 역할과 상관없이 우선 적당히 부패했다고 보고요. 그리고 푹 퍼진 채 꿈이 없이 살아요. 그들의 취미와 관심은 획일적이죠. 고급 차, 주말 골프, 그리고 크고 비싼 집 장만이 그것인데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즐기지 못한 채 내일, 모레 그리고 10년 뒤에 목숨 거는데, 맹점은 따로 있죠. 막상 죽음이라는 걸 응시하지 못한 채 버둥대요. 중년이야말로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종말이 아니라, 대비해야 할 손님임을 알 시기가 아닐까요?
- 조공례 <대지의 창>
- 비발디 <사계>
- 톰 웨이츠 <블루 밸런타인>
- 키스 자렛 <쾰른 콘서트>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조영남
<허슬러> 창간자 래리 플린트의 삶은 미국 헌법 수정 조항 제1조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이야.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식으로 말하면, 글이란 핫하고 말은 쿨하다는 거지.
"누구나 꿈을 꾸지만 모두 같은 건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아침에 그 꿈이 헛된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반면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위험하다. 눈을 뜬 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대낮에 꿈을 꾸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 톰 울프 <현대 미술의 상실>
- 만 레이 <나는 Dada다>
-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최재천
학문 노동자라는 표현을 프리드리히 니체가 처음 썼다.
- 안드레 군더 프랑크 <리오리엔트>
- 정민 <미쳐야 미친다>
- 이상묵 <0.1그램의 희망)
- 박지원 <열하일기>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눈먼 시계공>
-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 로버트 라이트 <도덕적 동물>
- 제프리 밀러 <연애>
마영범
자신만의 정돈된 일상을 가지고 있다는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게 없으니까 문화 따로 삶 따로인 채로 놉니다. 예를 들어,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거나 골프에 계집질하는 걸로 그치는 게 우리의 수준입니다. 저는 취미, 취향이라는 말 대신 일상 혹은 '삶의 미학'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합니다. 일상, 그것이야말로 나를 잡아주는 균형추인데, 그게 없으니 트렌드를 따라가고 남의 문화를 베끼면서 자꾸만 휘둘립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일본계 미국인 조지 나카시마의 원목 가구가 트렌드라고 하면, 모두 거기로 쏠립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가 건물 마감재로 좋다고 하면, 그런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섭니다. 사회가 붕 떠 있는거죠.
<장자> 각득기의(各得其宜). 세상의 사람과 사물은 모두 제각각인데, 마땅한 자기 자리가 따로 있다는 뜻이죠. 그럼 트렌드란 서로 다른 생각과 사람이 일시에 몰리는 현상일 뿐입니다.
탁석산의 오래전 베스트셀러 <한국의 정체성>에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것은 헛소리예요. 차라리 우리 재료를 외국 디자이너에게 던져주는게 낫습니다. 그들이 만들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죠. 그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환상을 깨라고 말한다. 그의 디자인 철학에 따르면 이 말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열등감, 웃기는 국수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자기 정체성도, 미학도 없는 허접한 사회라는 강렬한 비판이 이 대목에서 튀어나왔다.
디자인이란 세상의 모든 사물에 제자리를 잡아 주는 작업이다.
바우하우스를 세운 발터그로피우스는 말했다. "신이 있다면, 디테일 안에 존재한다.", "적은 게 많은 것이다. (Less is more)"
애플이 만든 첫 브로슈어에도 등장한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 정용선 <장자, 마음을 열어주는 위대한 우화>
- 다니자키 준이치로, <음예공간예찬>
- 후카사와 나오토 <디자인 생태학>
- 탁석산 <한국의 정체성>
- 웨인 다이어 <행복한 이기주의자>
강석진
특이한 천재를 볼 때 보통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 같은 곳에서는 그런 천재를 종종 왕따시키곤 합니다. 성숙한 사회, 성숙한 인간이라면 그러면 안돼요. 천재성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발전적인 것만을 꼴라내 한 차원 높아질 것을 생각해야죠. 암튼 허재 선수는 저에게 거대한 프리즘입니다. 천재만의 고독과 불안, 그럼에도 뭔가를 성취하려는 자세, 시대 흐름에 대한 반항과 오기까지를 보여주는 화두입니다.
'남자는 달아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아무리 상대가 강해서 내가 죽을지 몰라도 주먹을 움켜쥐고 맞서야 한다고!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말야!' -아다치 미츠루 <카츠>
- 프랑수아즈 말레 조리스 <종이로 만든 집>
- 박인환 <목마와 수녀>
- 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홍정욱
- 성경
- 공자 <논어>
- 한비자 <한비자>
- 플라톤 <국가>
- 로트레아몽 <말도로드의 노래>
송창의
앤 드루얀에게 바친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칼세이건 <코스모스>내 헌사
- 생 텍쥐페리 <어린 왕자>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백치>
-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 <반야심경>
차인표
- 최민식 <Human>
이원복
- 알렉상드르 뒤마 <몬테크리스토 백작>
-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 기 소르망 <원더풀 월드>
김동호
- 내 인생의 영화: 임권택의 만다라,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창동의 박하사탕,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 잭 엘리스 <세계 영화사>
-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 두보의 시를 우리말로 옮긴 <두시언해>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이왈종
시 300편을 읽으면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어진다. -공자 <思無邪>
틈틈이 비워둔 시간과 여유,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서양 사람들이 요즘)그걸 퀄리티 타임이라고 한다.
나만의 세계를 찾는다지만, 세상의 기준이 있고, 나만의 기준이 있다. 나에게 맞춰서 사는 게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어정쩡한 것, 그것은 아니다.
- 시경
호사를 누리는 그들에게 서재란 밀실이자 살롱 그리고 남자만의 베이스캠프이다. 흥미롭게도 어떤 종류의 서재이건 간에 그 안에 있을 때에 가장 그답게 보인다.
Fine. thy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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