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 멘토라는 표현에 딱 맞지는 않지만 좋은 감정으로 지지를 보내고 닮고 싶은 분들이 있다. 올 해엔 제이오에이치의 조수용 대표가 특히 그랬다.

NHN 그린 팩토리. 대림 CI, 대림 미술관, 삼성 숫자카드, 매거진 B, 일호식, Joh&Co. 까지.

'느낌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 디자인적인 천재성뿐만 아니라, 여러 인터뷰들과 매거진 B의 발행인 서문의 글들을 보면서 그의 생각과 철학에 반했다.

조수용 대표의 디자인, 건축, 브랜드, 창의에 관한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인터뷰 내용들을 몇 개 정리해봤다. 나는 어떤 철학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일에 집중하고 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자인을 잘하는 건 돈을 많이 써야 할수 있단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없어도 되는걸 꾸미는게 디자인이라고 생각들 하죠. 하지만 실제로 디자인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필요없는 것을 걷어버리는 과정이에요"

출근시간이 자율적이라는 질문에 "출근시간 정한다고 그시간동안 일하는 건 결코 아니니까요. 당신이 내 눈에 안보여도 당신을 믿는다는 이런 신뢰가 회사를 끌어가는 근간이죠. 연봉도 스스로 자기의 역량을 감안해서 직접 정해요"

(한경 2011 Nov)

 

 

“예컨대 오피스 디자인을 한다. 흔히 설문조사를 하는데, 사람은 자기 경험 안에서만 생각한다. 평생 본 사무실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소비자 조사는 필요없다. 디자인을 투표로 결정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사람에게 숨겨진 보편타당한 정서를 발견할 자신이 있다는 거다. 어떤 차를 타고 싶은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안 물어봐도 알 수 있다. 소비자 조사라는 건 책임회피다. 데이터가 이렇게 말했으니까, 잘못돼도 내 책임이 아니라는.

“확고한 가치관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건 오너만 할 수 있다. 결정적인 순간 결정을 하고 책임지는 거다. 디자이너는 ‘디자인 잘해 주세요’라고 부탁받으면 ‘어떤 게 잘하는 겁니까’ ‘당신 브랜드는 뭡니까’라고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디자인·브랜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존의 룰이 있고, 그걸 헤쳐나가는 건 아무나 못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처럼 브랜드를 책임지는 주관이 있을 때 파괴력 있는 결과로 이어진다.

집이 가치관의 결정판이다. 보통 건축가는 덩어리만 만들고 간다. 하지만 집을 구성하는 요소엔 건축·가구·조명·패브릭 등 다양한 것이 있다. 경계 없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느낌의 합을 만드는 디자인, 그게 디자인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다.”

(중앙선데이 2012)

 

 

“아무리 품질 좋은 신발, 가방이라도 경쟁 브랜드를 따라 한 거라면 그 브랜드는 죽은 거예요. 명품이든 싸구려든 자기만의 길이 있어야 해요. ‘개중에 나아서’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브랜드는 결과적으로는 살아남지 못해요.”

“무지는 ‘브랜드’의 편견을 없앤 브랜드예요. 이전에는 브랜드 하면 가슴팍에 커다랗게 로고를 박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거 비싼 거야’라는 의미로 말이죠. 그런데 ‘무지’는 이름을 숨겨요. 옷도 실용적이고 저렴하죠. ‘무지’의 보이지 않는 브랜드의 힘은 상당해요. 사람들은 ‘무지’를 입으면서 자기 자신도 쿨하고 다른 사람 눈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자기표현’을 하는 거예요.

캠핑용품은 ‘디자인의 극(極)’이에요. 가볍고 튼튼하고 엄청나게 실용적인 동시에 멋있어야 해요. 단순히 실용적이기만 하면 군용품이죠. 캠핑용품을 좋아하다보니 자연히 캠핑도 자주 다니게 되고 캠핑 마니아가 된 거죠.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컵, 탁자, 의자 등도 상당수 캠핑용품이에요.”

“1995년부터 10여 년 동안 IT 업계를 이끈 사람들 중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려는 사람은 아마 없을겁니다. 그들은 한국 경제의 태생을 바꾸는 주역이 될 거예요. 자식한테 기업을 안 물려주니 NHN, 다음 같은 IT업체는 주인 없는 회사가 될 거고 현재 재벌 중심의 경제 상황이 송두리째 바뀔 거예요. 10년 후쯤 이 기업들이 우리 사회의 주체가 되는 시기에는 브랜드에 대한 철학 없이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겁니다.”

(신동아 2011 Aug)

 

 

"한남동 일대를 ‘제2의 가로수길’로 만들고 의식주와 패션, 정보의 결정체인 호텔을 짓고 싶다."

"전여유가 별로 없는 집에서 자랐어요.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아들을 존중하는 걸로 표현하셨죠. 일 년에 한두 번 티셔츠 하나, 바지 하나 살 때에도,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등포 일대의 가게를 다 돌았어요. 그리고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뭘 사고 싶니? 어떤걸 사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가서 그 애를 사죠. 그게 하루 일과였어요. 디자인교육이 아니라, 그냥 후회할까봐. 그러다 보니, 어린아이의 눈에도 브랜드의 흥망성쇠가 보였고, 디자인이나 브랜드에 대해 본능적으로 체득하게 된 것 같아요. 어머니가제게 정말 좋은 선물을 주신 거죠. 지금도 출장 가면 백화점을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다 훑어야 해요. 그래야 시원하거든요.(웃음)"

(바자 2012 Oct)

 

 

"브랜드의 미래와 지향점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이제까지 모든 브랜드는 전부 ‘A급’과 ‘주류’처럼 보이는 대중적인 명품이 지향점이었다. 비싸고 많이 팔리는 매스티지 명품 말이다. 루이뷔통 같은 브랜드가 지향점일 것이다. 루이뷔통은 여전히 잘 팔리고 멋진 브랜드이지만, 루이뷔통을 들고 있는 게 멋져 보이는 것은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을 ‘B급 브랜드’라고 표현한다. ‘A급’ 바로 밑에 있는 브랜드라는 건데, 잘 만들어진 B급 브랜드에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을 동일시할 수 있는, 인간적인 브랜드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브랜드이든, 컨설팅하는 브랜드이든, 그 부분을 지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애플도 그렇게 해석한다. B급 브랜드의 감성을 계속 유지하는 브랜드, 실제로는 대중 시장을 지배했지만, 여전히 B급스러운 거다. 회장이 나와서 가격을 얘기하는 컨퍼런스도 그렇지 않나. 스티브 잡스가 열정적인 걸 떠나서, 아직도 ‘마이너’스러운 감성을 잃지 않는 거다. 회사가 작았을 때의 느낌을 커서도 계속 가지고 있는 브랜드라는 거다. 아직도 애플을 쓰면서, 나는 마이너에 속한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요인은 일관성에 있다고 본다. 애플에서 배워야 하는 점이 있다면, ‘A급과 매스티지로 넘어가지 않기’와 ‘B급스러움으로 남아 있기’라고 본다. 결국에는 많은 브랜드가 이제까지 있던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규칙을 다시 봐야 하는 순간이 폭발적으로 올 것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야 한다는 공식은 깨져야 한다. 그런 친구들이 돈도 잘 벌고 잘 됐으면 좋겠다. 나는 디자이너가 나중에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든지 디자인이 다음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디자인은 점점 커먼센스, 상식이 될 것이다. 웬만큼 잘하지 않고는 잘한다는 말 듣기 어려울 거다. 디자인을 커먼센스로 가지고 있는 제너럴리스트, 다방면에 걸쳐 박학다식한 사람의 근성을 가진 사람이 더 주목받을 것이다."

"늘 의식주를 하고 싶었다. 패션, 먹는 것, 공간 같은 것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돈을 많이 쓰고, 많이 보고, 나의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했던 것은 다 의식주에 있었다. 하나를 더한다면, 지금은 의식주만큼 중요한 게 ‘정보’이지 않나. 인터넷이라는게 있지만, 진짜 정보는 ‘누가’ 주는 정보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봤다. 너무 많으니까. 트위터의 좋은 점은, 누군가 한 번 걸러서 올려준다는 것이다. 갈수록 그런 형태로 갈 것이다. 그래서 잡지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좋은 잡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SPECTRUM 2011 Jun)

 

 

"NHN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저의 인터넷 사용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그게 인터넷 산업을 떠나고 싶었던 큰 이유이기도 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전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적게, 일주일에 두세 번 쓰는 정도입니다. 브랜드로서의 네이버는 마치 공들여 키운 자식 같은 느낌이어서 한참 후에 네이버가 좀 더 많이 바뀌면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magazyn 2011 Mar)

 

 

“지난해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보고 생각이 많았다. 잡스는 갔지만 가족들이 여전히 애플의 대주주다. 시간이 지나면 직원들을 잡스 가족 소유의 회사를 위해 일하는 셈이 된다. 기업이나 브랜드는 늘 주인이 바뀌어야 하는 것 같다. 회사 사이즈를 많이 키우지 않으려 노력한다. 엄청나게 돈 많이 버는 회사, 세계적 기업이 되는 것은 관심 밖이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을 정도면 되고, 의미 있는 브랜드를 남겨주면 된다.”

(중앙일보 2012 Nov)

 

 

"제 아이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아빠는 평생 가치를 만들고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가치를 만드는 건 한정된 금을 캐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에요. 세상에 없던 좋은 광물을 합성해내는 일이죠. 전에 없던 모바일이 세상에 드러난 것처럼, 앞으로도 인간 행복에 가치를 더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브랜드에 철학이 더해지면 소비자들은 물건이 쓸모없고 못생겨도 사요. 그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 이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생각을 곧게 세우면 부족한 게 많아도 그 사람은 잘 살아요. 그게 바로 밸런스죠."

(조선일보 2019 Oct)

 

 

Fine. thy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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