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저)
유시민이 정치를 그만뒀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컸다. 하지만 전업 작가로 전념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반가웠다. 그 다짐의 시작 <어떻게 살 것인가>.
사실 유시민 본인의 정치 은퇴와 맞물려 발간된 책이기에 정치인의 삶을 돌아보는 '정치 회고' 혹은 '자서전'의 느낌이 아닐까 걱정스러웠는데 오히려 정반대였다. 작가 유시민은 청년, 가장, 직업인, 중년으로서 보편적인 하지만 평범하진 않은 'how to live'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유시민의 생각을 훔쳐보는 재미는 있었지만, 읽는 내내 원인모를 먹먹함이 가시질 않았다. 아무리도 내가 유시민을... 100분 토론에서 간지나던 모습의 유시민을 좋아했던만큼 정치인으로서 성공하길 바랬나보다. 이제 그런 막연한 먹먹함을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어떤 것'에 대해 무책임하게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고...
기억에 남는 구문들
품위있고 존엄한 삶의 기본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나는 그것이 품위 있는 인생, 존엄한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잊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이다.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가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음을 황홀하게 느끼는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인가? 내 삶은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는가?'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삶의 존엄도 없는 것이다.
내 방식. 자기 결정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가져다 쓰자.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재능이란?
재능의 본질은 일을 즐기면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삶의 구성요소는 뭘까?
삶의 ‘위대한 세 영역’은 사랑, 일, 놀이이다. 이것은 당위가 아니다. 이 셋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실제 이 셋으로 삶을 채우며, 여기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위대한 세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셀리그만의 견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 셋 말고도 ‘연대 solidarity, 連帶’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것도 사랑의 표현 형식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사랑과는 의미가 다르다. 좁게 보면 연대란 동일한 가치관과 목표를 가진 누군가와 손잡는 것이다. 넓게 보면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삼아 어디엔가 함께 속해 있다는 느낌을 나누면서 서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일까? 도대체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 일까? 계속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긴 시간 내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는지 잘 안다. 내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내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분명하지가 않다.
인생의 성공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 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또는 사회의 평판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처음부터 절반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법대에 가려고 사회계열을 택함으로써,나는 스무 살에 절반의 실패를 안고 인생 항해를 시작했다. 그 선택은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남겼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영문과를 가서 철학을 공부하라는 아버지 말씀을 따랐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짝짓기, 결혼 제도의 모순
우리는 보통 살아보지도 않고서 평생 함께 살겠다고 공개 서약을 한다. 실망과 배신, 갈등과 결별의 씨앗은 바로 이 모순의 틈새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다. 숫총각 숫처녀가 한번 자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짝짓기 행동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먼저 함께 살아보고, 상대방에 대해서 확신을 가졌을 때 혼인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
강연이나 인터뷰를 하다 보면 진보주의란 무엇이며 보수주의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진보주의를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라고 이해하면 그 차이를 비교적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진보는 서민복지를 확대 하기 위한 부자증세에 찬성하지만 보수는 반대한다. 진보는 외국이 노동자의 권리와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내국인의 이익과 민족문화의 고유성을 중시한다. 진보는 동성애에 대해 너그럽지만 보수는 동성애를 혐오한다. 진보는 전쟁에 반대하고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부국강병을 좋아하고 외부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선호한다 진보는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의 권익 보호를 매우 강조하지만 보수는 덜 그렇다. 진보는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보수는 개인과 가족의 책임을 중시한다. 뭉뚱그려 말하면 보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진화적으로 익숙하고 생물학적으로 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진보는 진화적으로 새롭고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Fine. thy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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