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철학서적 중 가장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던 <피로사회>를 리뷰해본다.

 

 

 

이번 <피로사회>리뷰는 슬라이드 두 장으로 요약해봤다(축약 정리는 쉽지 않았지만 연습이 되는 것 같아서 혼자서 신선해 함).

 

그 외 필사 내용 중에 인상깊었던 부분들

성과사회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21세기의 대표 질병인 소진증후군이나 우울증 같은 심리 질환들은 모든 자학적 특징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고 자기를 착취한다.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마치 늘어나는 자기 자신의 지방질에 병들어가는 사람처럼,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마모시켜간다. 그 결과 스스로를 낙오자로 느끼는 우울증 환자가 넘쳐나고, 성과를 위해 약물을 불사하는 도핑주체도 증가하고 있다.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의무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복종, 법, 의무 이행이 아니라 자유, 쾌락, 선호가 그의 원칙이다. 그가 노동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획득이다. 그의 노동은 향유적 노동이다. 그는 타자의 명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명령하는 타자의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타자로부터의 자유가 해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데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타자로부터의 자유는 나르시시즘적 자기 관계로 전도되며, 이는 오늘날 성과주체가 겪는 많은 심리적 장애의 원인이 된다.

 

피로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

피로는 성과주체의 만성질환이다.

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근본적 피로"는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는 탈진 상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근본적 피로는 오히려 특별한 능력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영감을 준다. 그것은 정신이 태어나게 한다. "피로의 영감"은 무위에 관한 것이다. 피로의 영감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는 무엇을 내버려두어도 괜찮은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피로는 특별한 태평함, 태평한 무위의 능력을 부여한다. 그것은 모든 감각이 지쳐 빠져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피로속에서 특별한 시각이 깨어난다.

 

역자의 <피로사회>에 대한 의견

한병철이 이야기하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전환, 부정성의 패러다임에서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데도 매우 생산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병철은 성과사회와 성과주체의 이상이 오늘의 세계에서 전일적 지배를 확립한 자본주의의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더욱 생산적으로 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요구라면 이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이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지배와 강제에 의한 타자 착취에서 성공적 인간이 되기 위한 자기 착취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한병철은 그것을 착취의 진화로 파악한다. 타자 착취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자기 착취라는 것이다. 성공학 개론서들이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경영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을 한병철은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본가이며 착취자입니다’라고 읽는다.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인간 자신은 소진되고 마모된다.

한병철은 시스템이 이상적인 자아가 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으로 지탱되고 있다면, 개개인이 그러한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데서 비로소 시스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는 우울증을 이 시대의 핵심적 질병으로 지목하고, 그 배후에 성과사회의 압력이 놓여 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병의 진단은 나왔지만 그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타자의 강제가 인간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런 타자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통해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소회

<피로사회>는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철학서(그 이전에 독일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음)이다. 사랑을 받은만큼 혹평도 많았다('피로사회를 경멸하는 이유' 기사 참조).

하지만 읽어볼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노동'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우울감을 느낀다면 동조할 만한 이야기들과 여러 철학자들의 이론들을 보며 리프레쉬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스스로의 '피로'를 통해 '줄어든 자아의 늘어남'(철학서를 보다보면 이처럼 뭔소린지 싶은 문구가 많아서 긍정/부정적 재미를 얻는다)을 느껴보고 싶다.

 

 

Fine. thy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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