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리프킨, 미래, 산업혁명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묵직함과 호기심.

왜 읽게 되었나?

  • 엔지니어라면 읽어야 할 것 같은 독한 단어 '혁명'에 대한 궁금증
  • 간지나는 책 표지 (뭔가 3차 산업혁명에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검은 배경. 세계지도에 연결선을 그어놓은 '글로벌'한 느낌적인 느낌.)
  • 제레미 리프킨의 무게감 + 엄청난 언론의 추천 (CEO가, 휴가가서 읽을, 경제 연구소가, 서점이 추천한 등등)

 

제레미 리프킨의 책은 유독 분량이 많아서 꽤 두껍다(적어도 내가 만난 작품들은).

그의 책은 읽고나면 다양한 사례와 깊은 통찰이 장점인 반면에 간결하게 본인 주장을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독자를 지치게 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3차 산업혁명>도 특유의 '제레미 리프킨 스타일'이 녹아 있어서 4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책 몇 권을 읽은 듯한 버라이어티한 소재들로 채워져 있다.

 

내 마음대로 책 내용 5줄 요약

  •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기술과 재생 에너지가 융합하여 가져올 협업시대를 의미한다.
  • 3차 산업혁명의 핵심요소는 재생 에너지의 생성-전환-저장-교환과 관련한 기술과 인프라이다.
  • 대부분의 국가(특히 미국)에서는 3차 산업혁명과 관련 필요성은 인지하나 기존 화석연료 주도기업, 로비스트 영향으로 적극적 추진이 안되고 있다(EU는 상대적으로 3차 산업혁명 준비 및 추진 우등생).
  • 소셜 미디어, 3D 프린터, 소유에서 공유로의 사회 요구 변화(공유경제) 등은 3차 산업혁명과 일맥상통하는 협업시대로의 징후이다.
  •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얻게될 에너지의 민주화는 근본적으로 사회체계를 재정립해 비즈니스-정치-교육-사회참여 등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3차 산업혁명?

제레미 리프킨은 '산업혁명'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에너지가 만날 때 발현된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가 정보통신기술, 스마트폰 등으로 마치 '새로운 산업 사회'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화석(석탄, 석유) 에너지 중심의 2차 산업혁명 아래에 있다면서 1, 2, 3차 산업혁명의 요소를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 1차 산업혁명: 증기기관, 인쇄술, 석탄
  • 2차 산업혁명: 자동차, 전기, 석유
  • 3차 산업혁명: 인터넷, 재생 에너지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3차 산업혁명의 요소인 인터넷 + 재생 에너지라는 것은 쉽게 말해 우리가 현재 페이스북에 내 생각과 사진을 공유하고, 카카오톡으로 메세지를 교환하듯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환경에서 개인(기업, 정부, 건물 등도 동일)이 에너지(재생 에너지)를 생성-교환-공유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읽을만 했나?

  • 미래를 이야기하는 학자들의 책을 맹신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편인데, 그 중에 단연 제레미 리프킨은 논리적으로 거부하기 어려운 방대한 근거와 시나리오가 있는 학자다.
  • <3차 산업혁명>에서는 주로 재생 에너지, 협업 사회, 개인의 민주적 사회 참여에 대해 다뤘지만, 그 외에도 미래사회를 그려볼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다뤘다.
  • 책이 두꺼운 편이라서 출퇴근 길에 들고다니며 읽기를 권하고 싶진 않다. 양장본 책의 '뽀대가' 욕심나긴 했지만 출퇴근길 무게부담 때문에 나의 경우 <3차 산업혁명>은 e-book으로 봤다.

 

기억에 남는 구문들

(*중요 내용이 아닌 신선했던 이야기들 위주임)

현대 기업의 새로운 합리성 원칙을 가장 기꺼이 수용한 부문은 공립학교 시스템이었다. 처음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나중에는 여타 모든 나라의 공립학교들이 이 원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현대 교육의 주된 사명은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를 배출하는 것이었다. 학교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한다. 하나는 읽고 쓸 줄 아는 노동인구를 창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적인 중앙집권형 조직에 복종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회사에 들어가면 상부의 지시를 받아 가능한 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아래에서 결과물을 산출해야 했고, 자신에게 노동을 지시하는 권위에 대해서 결코 의문을 품어서는 안되었다. ... 이런 식의 교육 모델은 오늘날까지 계속 고수해 왔는데 최근 3차 산업혁명이 태동하면서 비로소 의문이 제기되었다. 3차 산업혁명의 분산적, 협업적 성격이 그에 걸맞은 교육 모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4대 기업 중 세 개가 석유회사다. 로열 더치 쉘, 엑슨 모빌, 영국석유회사(BP)가 그것이다. 이 거대 에너지 회사 아래에 모든 산업분야를 대표하는 약 500개의 세계적 기업이 포진하고 있다. 이 회사들의 수입을 모두 합치면 22조 5000억 달러에 이르고 이것은 전 세계 GDP의 합계인 62조 달러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2001년 미국 대기업의 CEO들은 노동자 평균임금의 531배를 벌었다. 1980년에는 42배에 불과했음을 참고하라. 더 놀라운 것은 1980년부터 2005년 사이 미국의 소득 증가분의 80퍼센트가 최상위 1퍼센트 부유층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1976년 미국 상위 1퍼센트 소득자들의 세전 소득은 국가 전체의 9퍼센트였는데, 2007년에는 23.5퍼센트로 늘었다. 반면 그 기간에 미국 청장년층 가계소득의 중간값은 낮아졌고 빈곤층의 비율은 증가했다. 1차, 2차 산업혁명 특유의 하향식 경제생활 구조를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것으로 '트리클다운(trickle-down:물이 넘쳐 바닥을 적신다는 뜻)' 이론이 있다.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이들에게 수혜를 주면 충분한 잉여의 부가 생성되어 아래쪽에 위치한 소기업이나 노동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고, 결국 경제 전체의 이익이 된다는 이론이다. 물론 2차 산업혁명 말기를 사는 많은 사람의 생활수준이 1차 산업혁명 초기에 비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탄소 시대의 대부분의 수혜를 꼭대기에 있는 부유층이 누려온 것 역시 사실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분산성이기 때문에 위계서열식 통제 매커니즘과는 맞지 않다. 협업 매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새로운 수평적 에너지 체제는 향후 거기서 증식되어 나올 수 많은 경제활동에 대한 조직구조 모델을 확립한다. 산업혁명의 분산성과 협업성이 클수록 생성되는 부의 분배 또한 당연히 더욱 분산될 것이다
 
3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이 연방 차원에서 직면한 문제는 다음과 같이 이중적이다. 첫째는 화석연료 및 원자력 중심의 전통적인 에너지 분야가 지닌 중앙집권형 사고와 하향식 조직 구조다. 3차 산업혁명은 그러한 뿌리 깊은 경영 방식에 도전 중인데, 그런 기업의 경영진이 스스로 대안을 생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는 그런 기업적 사고방식이 의회에도 똑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위원회 위원장, 상원의원, 하원의원, 입법 실무자들은 법안 초안을 작성할 때 에너지 업계와 매우 긴밀이 공조한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와 전기의 촉진 및 규제에 관한 의회의 익숙한 사고방식에 회사 이사회의 사고방식이 겹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제안된 법안을 보면 일 방향 고압 그리드를 서부에서 동부로 설치해야 하고 1600만 달러가 소요될 예정이다. 수백만 명의 전기 소지바는 더 많은 전기료를 지불해야 한다. 결국 소비자가 전력회사에 보조금을 주는 셈이다. 이런 송전 방식은 중앙집권형 지휘 통제로 전력을 관리했던 1차, 2차 산업혁명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만 특혜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연방 정부가 분산형 전국 전력 그리드를 설치한다면 대륙 전체를 연결하고 모든 지역의 전력 생산자가 네트워크를 통해 송전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분산형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보았던것 같은 수평적 확대가 이루어질 것이고, 정보 공유 비용의 경우처럼 모든 기업과 소비자는 전기 요금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대형 석유회사들이 집중적으로 애썼던 일은 대중의 마음에 기후변화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심는 것이었다. 석유, 석탄, 공익사업 업계는 2009년과 2010년 사이라는 짧은 기간에 5억 달러 이상을 정부에 대한 로비에 쏟아 부어 기후변화 관련 법안의 통과를 막았다.
 
위키피디아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공간들은 인간이 본래 이기적인 존재로서 끊임없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고자 한다는 고전 경제 이론의 기본 가정에 도전장을 던진다. 3차 산업혁명의 커뮤니케이션 및 에너지는 고전 경제 이론에서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생물학적 욕구를 끌어낸다. 바로 사회적 교류의 욕구와 공동체에 대한 추구다. 뉴욕 타임즈 기자 마크 러바인은 이러한 새로운 사고 변화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표현했다. "공유와 소유의 관계는 아이팟과 8트랙 녹음테이프의 관계, 태양광 전지판과 탄광의 관계다. 공유는 깨끗하고 신선하며 세련되고 포스트모던하다. 반면 소유는 지루하고 이기적이며 소극적이고 후진적이다." 나는 지금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에 일어나는 근본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변화는 전통적 제조, 소매 분야 전체에 걸쳐 진행 중이며 기업이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야기 만들기와 그 전달에 관해서라면 미국만큼 재능 있는 나라가 없다. 매디슨 애비뉴와 할리우드 그리고 실리콘밸리가 특히 그 방면에 탁월하다. 그동안 미국에 우위를 안겨 준 것은 생산 및 제조 감각이나 군사력이라기보다는 미래를 생생하고 명확하게 그려 내는 묘한 능력이었다. 이러한 능력으로 기차역을 떠나기도 전에 목적지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스물다섯 살 이하의 청년이 자신의 '이념적 신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뭔가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층은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의 이점이나 사회주의 이념, 지정학 이론의 숨은 암시등을 토론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젊은 층의 정치 성향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얘기다. ...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인터넷 통신으로 사회화된 신세대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부상 중인 새로운 정치 사고방식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에게 정치적 성향이란 좌파 대 우파의 문제라기보다는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적이냐 아니면 분산적이고 협업적이냐 하는 문제였다. 충분히 말이 되는 얘기다.
인터넷 소통으로 사회성의 많은 부분을 형성한 최근의 두 세대는 세상을 나눌 때, 하향식이며 폐쇄적이고 소유권 중심의 사고방식을 이용하는 사람 및 기관 그리고 수평적이며 투명하고 개방된 사고방식을 이용하는 사람 및 기관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젊은 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정치 사고방식의 변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변혁은 21세기 정치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은 대산업 시대 전설의 마지막 편이면서 동시에 다가오는 협업 시대의 첫 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3차 산업혁명은 경제사의 두 시대, 근면한 행동 방식이 특징이던 시대와 협력적 행동 방식이 특징인 시대를 잇는 과도기를 의미한다. 산업 시대가 규율과 근면한 노동, 권위의 하향식 흐름, 금융자본의 중요성, 시장의 작용, 소유권 관계를 중시했다면 협업 시대는 창의적인 놀이와 피어투피어 상호작용, 사회적 자본, 개방형 공유체 참여, 글로벌 네트워크 접속 등을 보다 중시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