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기업의 실패는 성공만큼 중요하고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사라진 실패>는 대기업 성공 이미지와 편견이 아닌 실패의 이야기들을 토대로 각 대기업을 돌아볼 수 있는 '참신한 진실'을 정리했다.

왜 읽게 되었나?

  •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작가 김동조 님의 강력 추천이 계기가 됨
  • 저자에 대한 신뢰감 (좋은 칼럼을 쓰기로 유명한 신기주 기자)
  • 대기업 재직자로서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실패를 다뤘다는 점에 호기심 증대

 

내 마음대로 책 내용 3줄 요약

  • 총 13개 대기업의 실패 스토리, 각 기업들이 숨기고 싶은 실패의 이야기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들춰냄. 이 책의 최고 특장점.
  • 실패에 대한 자극을 희석시켜줄 그들의 강점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임
  • 삼성의 초기 스마트폰 삽질, LG 그룹의 분리 및 2인자 팔자, 한화의 회장에 대한 충성과 의리, 신세계 일가의 비윤리, NHN의 잃어버린 벤처정신 등

 

읽을만 했나?

  • 대학시절 대기업은 각 회사에 다니던 선배들, 기업 별 광고 이미지로 느끼는게 전부였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조차 기업 별 역사나 배경, 문화에 대해서는 깊게 알지 못했다.
  • <사라진 실패>는 각 대기업을 '디스'하는 책이 아니다. 기업의 뼈아픈 실패와 의사결정 실수 등 '삽질'을 당시 경영자-시장-정부에 대한 상황 분석과 함께 곁들인 분석 보고서다.
  • 사람도 그렇지만 기업도 힘들 때, 안 좋을 때 본성을 가장 잘 살필 수 있다. 때문에 <사라진 실패>에서는 이미지와 편견에 가려져 있던 각 대기업들의 '쌩얼'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다.

두산 중공업과 인프라코어가 '사람이 미래다'라는 이미지로만 보인다면 (두산의 주요 계열사는 IMF 시절 대우 그룹에게 인수한 것이 대부분이다),

NHN이 아직도 한국의 '구글'과 같은 기업문화를 지닌 회사로 느껴진다면 (NHN의 별명은 리틀 삼성),

삼성전자가 애플이나 구글에 비해서 인력 규모가 큰 이유를(모바일 사업만 두고 봤을 때) 모른다면,

LG 전자가 2000년대 중반부터 힘이 약해지고, 잘나가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왜 경영진에서 물러났는지 그 이유가 유추가 안된다면?

YOU NEED TO READ THIS BOOK.

 

 

책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내용 간략히 필사

서문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실패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너무 크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기업이 성공을 거듭할수록 아무도 감히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게 됐다. 한국 기업들은 스스로를 성공 신화로 치장하기 시작했다. 참담한 실패 사례를 애써 지우고 성공하고 승리한 기록만 남기려고 애써왔다. 한국이 기업 사회로 진입하면서 언론 역시 실패를 기록하는 것을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이제 기업은 언론과 사회에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모습을 미화한다. 급기야 한국 기업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화가 만들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 기업도 실패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실패하고 있다. 이 책에선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어떻게 실패해왔고 왜 실패해왔으며 무엇에 실패해왔는지를 정리했다.

 

LG: 지주회사 전환과 맞바꾼 혁신의 속도

  •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은 그 어느 해보다 재벌기업 집단에 대한 압박이 강한 시기였다. LG그룹은 앞장서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 명분이었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LG그룹은 구 씨 가문과 허 씨 가문이 동업한 회사다. 동업이 삼 대째 내려오다 보니 지분 구조가 고차방적식 수준으로 난해해졌다. 어떤 식으로든 분가시킬 필요가 있었다. 크게 세 조각이었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직계 일가가 (주)LG를 중심으로 LG전자와 LG화학과, LG텔레콤을 가져갔다. 구인회 창업주의 넷째, 다섯째, 여섯째 남동생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로 이어지는 창업 1세대 형제 가문이 LS그룹으로 분가했다. 동업자 허 씨 가문이 GS건설과 GS칼텍스를 중심으로 하는 GS그룹으로 분리됐다. LG가문은 뿌리 깊은 유교 집안이라서인지 장자 우선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킨다. 본가 구인회 가문을 중심으로 LG그룹을 재편성한다는 게 지주회사 전환의 진짜 목적이었다. 그 마지막 단추가 구자홍 LG전자 회장의 퇴진이었다.
  • 구자홍 회장의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기에 이제 LG가 아니라 LS 사람이었다. LG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의 CEO를 LS그룹의 대주주가 맡고 있는 형국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구자홍 회장이 LG전자 회장으로 있는 한 LG와 LS의 계열 분리는 미완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것이 가문이 추석 가족회의에서 구자홍 회장의 강퇴를 결정하게 된 이유였다. 사실 구자홍 회장은 자신이 가진 LS그룹의 지분을 매각해서라도 LG전자 회장으로 더 일하고 싶어 했을 정도로 LG전자에 대한 애착이 컸다(구자홍 회장의 LG전자 재직 시절 LG전자는 사상 최대 실적, 글로벌 핸드폰이 4년 동안 45% 성장 등 전성기를 이끌었다).
  • 2003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자 LG전자는 더 이상 기술 혁신 기업이기 어려웠다. 지주회사 체제는 자본을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형태이기에 대주주라고 해도 결국 남보다 투자액이 큰 투자자에 가깝다. 미국식 기업 형태다. 이런 식의 기업 형태는 기술 혁신이나 사업 혁신보단 매출과 영업 이익률 같은 단기 성과에 집중하기 쉽다. 잭 웰치가 이끌던 GE나 한 때 전 세계 최강 기업이었던 GM도 그랬다. 두 회사 모두 금융 부문을 강화하고 기술 혁신보단 주주 이익을 우선하면서 혁신성을 잃어갔다. 주주들은 GE와 GM의 배당 잔치에 환호했지만 두 회사 모두 미래를 잃었다. 같은 기간 애플이 단 한 차례도 배당을 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배당을 극도로 반대했던 것도 주주 자본주의의 한계와 모순이 기업에 미치는 해악을 직시했기 때문이었다.

 

르노삼성자동차: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차 공장으로

  • 윈-윈이다. 윈-윈-윈이 아니다. 르노와 닛산한텐 좋다. 르노삼성한텐 별 좋을 것도 없다. 카를로스 곤 회장이 제시한 해법(닛산의 차세대 로그를 르노삼성의 부산 신호동 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것)은 결국 르노는 돈을 벌고 닛산은 차를 팔고 르노삼성은 일을 하는 구조다. 르노삼성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완성차 하청 업체 역할을 하게 된다. 르노삼성은 SM이 아니라 닛산 상표가 달릴 차를 대신 만들어주는 셈이다. 결국 주문자 상표 생산 방식(OEM)이다. 이제까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르노삼성이 생산한 차는 르노삼성이 아니라 르노의 상표를 달고 수출됐다. 한국 시장만 벗어나도 SM이란 브랜드의 종적이 묘연했다. QM5는 르노 콜레오스가 됐고 SM5는 르노 래티튜드가, SM3는 르노 플루언스가 됐다. 르노삼성은 이미 르노의 OEM 공장이 된 지 오래였다.

 

한화: 황제가 군림하는 의리의 조직

  • 한화그룹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의리다. 상명하복과 일사분란을 강조하는 폐쇄적인 피라미드 조직일수록 의리를 강조한다. 내부 구성원끼리의 의리는 거꾸로 외부인에 대한 배척을 의미한다. 의리로 묶여진 조직에선 의리의 정점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총수다. 김승연 회장도 틈날 때마다 의리를 강조해왔다. 한화그룹 계열사의 윤리 강령에는 대부분 의리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해서도 한화그룹은 의리로 맞섰다. 한화그룹은 관련 자료를 청계산 인근 비닐하우스에 숨겨뒀다가 적발됐다. 경비 용역을 고용해서 검찰 수사관들을 몸으로 막았다. 한화다운 고육책이었다. 한화 조직은 김승연 회장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르기로 유명하다.
  • 한화는 좀 다르다. 직원들한테 유달리 애사심을 강조한다. 개인적인 목표보단 회사의 목표를 위해서 일하라고 말한다. 조직은 보상을 해줄 뿐이다. 보상은 결국 총수가 해준다. 총수의 마음에 들어야 보상도 커진다. 충성해야 보상받는다. 의리와 충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건 어쩌면 재계 14위다운 발상일 수 있다. 결국 기업은 인재 싸움이다. 슈퍼급 인재는 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나 LG전자로 먼저 간다. 슈퍼급 인재는 개인적인 목표가 회사의 목표와 일치할 때만 입사한다. 최정상급 조직에서 일하고 싶다거나 최고 대우를 받고 싶다는 가치들이다. 추격하는 재벌들 입장에선 그런 보상을 해주기 어렵다. 대신 강조하는 게 무형의 가치들이다. '1등을 한번 꺾어보자'라거나 '불가능에 도전해보자'는 식의 명분이다. 충성과 의리일 수도 있다. 예전에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수준이 아니었을 때 인재를 끌어들일 때 너나 할 것 없이 애국심을 자극했다. 그것 말고는 수단이 없었다. 충성과 의리를 강조하는 한화의 기업문화는 재계 14위한텐 유효한 전략일 수도 있다.

 

NHN: 삼성의 길을 쫓아가다

  • 게임은 기술이면서 창작이다. 검색은 기술이면서 서비스다. 한게임을 중심으로 회사가 돌아가던 시절엔 NHN은 창작하는 기술 회사에 가까웠다. 자연히 개방적이었다. 한게임 출신 인재들이 특히나 자유분방했다. 그들은 NHN을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회사로 이끌고 싶어했다. 김범수, 천양현, 문태식, 남궁훈 같은 한게임 쪽 NHN 창업자들은 회사 안에서도 가장 탈조직적인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캐시카우가 한게임에서 검색 광고로 바뀌면서 NHN의 역량은 검색과 서비스와 영업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갈림길이 있었다. 검색 기술에만 집중하던 네이버가 이메일과 커뮤니티 서비스를 시작한 일이다. 당시로선 앞서가는 다음과 야후와 프리챌을 추격하자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결정으로 NHN의 항로는 기술 기업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영원히 바뀌어버렸다. 갖가지 서비스를 유지하자니 회사 인력은 갈수록 늘어만 갔고 그 인력을 유지하자니 보수적인 인력 관리 체계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2010년 NHN의 전체 인력은 3,000명 선까지 불어났다. NHN의 인사 업무는 삼성그룹 인사실 출신이 맡았다.
  • 구글은 개방적 기술 기업을 꿈꾼다. NHN은 폐쇄적 서비스 기업을 지향한다. NHN은 창업 10년 만에 가장 개방적인 기업에서 가장 폐쇄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 NHN은 많이도 입사하지만 많이도 그만두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IT벤처의 특징이라지만 NHN은 이미 벤처의 테를 벗은 지 오래됐다. 익명을 요구한 NHN의 관계자는 말한다. "NHN은 밖에서 보면 개방적인 기업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안에 들어가보면 기대했던 것과는 상당한 격차를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건 아마 누구나 겪는 일 같아요. 사내 정치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지요. 관료주의도 있고요. 게다가 아주 자주 조직 개편을 하기 때문에 몇 년 일하다 보면 아주 냉정한 회사란 걸 알게 됩니다. 조직 개편으로 사람을 자르기 때문에 그전에 나가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죠."
  • NHN의 전 임원은 말한다. "NHN이 폐쇄적인 기업 문화를 갖게 되고 결국 창의성을 잃은 공룡이 돼버린 건 벤처 신화를 만들었던 80년대 학번 벤처 세대의 보수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겁니다. 삼성은 오히려 젊은 조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NHN은 위기 관리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치중해온게 사실입니다. NHN은 더 이상 혁신을 이끌 수 있는 회사가 아닙니다. 구글과 NHN의 가장 큰 차이는 이념입니다. 구글한텐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이 있습니다. 모든 운영의 근간이 되는 OS는 그런 꿈을 가진 조직만이 시도하는 혁신입니다. NHN한텐 그런 꿈이 없습니다. OS를 시도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돈이 있고 없고 기술의 유무와 상관 없습니다."
  • NHN은 재미있는 기업이다. 검색과 게임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면서 기술 혁신을 주도했다. 검색 광고 시장을 개척하면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했다. 옛날 얘기다. NHN는 재미없는 기업이 됐다. 검색과 게임은 암투를 별여다. 기술 기업 대신 서비스 기업이 됐다. 포털에서 소셜로 시장 흐름은 변하면서 검색 광고 매출도 주춤하다. NHN은 10년 만에 가장 개방적인 기업에서 가장 폐쇄적인 회사로 탈바꿈했다. 한때 기술 혁신 기업이 될 걸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NHN은 서비스 추격자가 됐다. 리틀 삼성이 됐다.

 

신세계: 윤리로 무너지는 윤리 기업

  • 무엇보다 신세계는 이번 일(신세계SVN과 이마트의 불공정 거래)로 대기업 집단의 부당 지원 행위로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가 적발된 첫 번째 사례가 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말했다. "이번 조치는 대기업 집단 소속 회사가 총수 일가 및 계열 회사가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 계열사의 베이커리와 피자, 델리 사업을 판매 수수료율 과소 책정 방식으로 부당 지원함으로써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에 이용된 행위를 적발하여 제재한 첫 번째 사례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신세계그룹에 40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내린 이유다. 이른바 로열패밀리의 사익 추구가 도마 위에 오른 셈이 됐다. 정말 신세계를 연 꼴이다.
  • 문제가 있다. 사실 이건 신세계그룹의 문제만이 아니다. 신세계 총수 일가의 문제다.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부사장에 대한 혐의도 있단 얘기다. 이마트는 상장 회사인데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SVN을 위해 수수료를 무단으로 낮춰줬다. 결국 이마트가 더 받았어야 하는 이익을 포기했다. 그 이익은 신세계SVN한테 돌아갔다. 한 기업 CEO가 기업에 손실을 끼치거나 해를 입히거나 경쟁 회사한테 유리한 결정을 하면 배임이 된다. 이사회가 들고 일어나고 주주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가 딱 그렇다. … 신세계가 정용진 체제로 진입한 지 2년여 만에 신세계의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마트는 노조 설립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결국 질주하던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와 이마트의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했다. 성공이 윤리에서 시작됐듯 실패도 윤리에서 시작됐다.

 

삼성: 자신을 넘지 못하는 거인

  • 많은 혁신 기업들이 홀짝수 혁신 전략을 응용한다. 대표적인 기업이 인텔이다. 인텔은 반도체 메모리칩의 속도와 기능을 혁신하면서 한 차례는 설계를 혁신하고 다른 차례엔 그 설계를 혁신하고 다른 차례엔 그 설계를 진화시킨다. 서로 다른 반도체 연구소에서 전혀 다른 반도체를 설계해서 내부 경쟁을 벌인다. 폭스바겐도 마찬가지다. 폭스바겐의 대표적인 대중차인 골프의 경우엔 홀수 세대 차에선 혁신을 하고 짝수 세대 차에선 진화시킨다. 진화란 결국 혁신한 결과물을 안정화하고 대중화하는 과정이다. 모두가 아이폰 4를 두려워한 이유였다. 아이폰 4는 아이폰 3 혁신의 진화형이 될 터였다. 그렇게 아이폰은 대적할 수 없는 완전체가 될 터였다.
  • 애플의 앱스토어가 백화점이라면 안드로이드의 앱스토어는 저잣거리였다. 결국 구글에서도 자신들이 주도권을 쥔 소프트웨어 혁신에서 하드웨어 혁신으로 바통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을 100퍼센트 활용하는 헤비 유저 대신 스마트폰이라는 유행을 추종하는 소비자를 주워담기에도 하드웨어 혁신 전략이 주효할 수 있었다. 앤디 루빈이 갤럭시S 출시 행사장을 찾은 이유였다. 안드로이드 진영에선 삼성전자가 제일 큰 제조사인건 틀림없었다. 그렇게 구글과 삼성의 배꼽이 맞았다.
  • 이건희 회장은 분명 통찰력 있는 경영인이었다. 그는 반도체 산업은 시간 산업이라고 정의했다. 시계는 패션업이었다. 가전은 조립양산업이고 카드업은 술장사라고 했다. 백화점은 유통업이 아니라 부동산업이라고 했다. 이건희 회장은 사업의 본질이 업태를 통찰하는 데 있다고 봤다. 그 본질에 따라 경영을 했고 성공했다. 이 회장만 그랬던 게 아니다. 사업적인 성공을 거둔 경영인들 모두 산업의 본질을 남들과 다르게 통찰했던 인물이었다. 빌 게이츠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스티브 잡스는 MP3보다 음원 유통과 음성 통화가 아닌 애플리케이션을 본질로 판단했다.
  • 2004년 삼성전자는 스스로 혁신자가 될 수 있었다. 앤디 루빈이 청바지를 입은 채 청색 수트를 차려입은 삼성전자 임원들을 만나려고 한국을 찾았을 때 말이다. 정작 삼성전자는 혁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혁신을 한적도 없고 혁신을 할 뜻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삼성전자의 실패였다. 삼성전자는 진화자가 될 기회마저 놓치진 않았다. 삼성전자는 기술 혁신이 끝나갈 때 애플의 바통을 이어받아서 기술을 대중화했다. 어쩌면 삼성전자한텐 더 어울리는 길이었다. 사실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조직한텐 유일한 길이었다. 애플이 혁신 조직으로서 유지되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수직 계열화를 이뤄왔다면 삼성전자는 진화 조직이 되기 위해 부품과 제조를 수직 계열화해왔다. 외부에서 혁신이 일어났을 때 누구보다 빨리 그 혁신을 대중화할 수 있는 구조다.
  • 삼성전자가 처음에 스마트폰 대응에서 해맸던 건 반도체적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성전자의 수뇌부는 여전히 1990년대부터 반도체 신화를 이룩했던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속도전의 명수들이었다. 옴니아와 갤럭시A는 그래서 실패했다. 이건의 회장 역시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었다. 차이가 있었다. 등판 시기가 달랐다. 기술 혁신기가 끝나고 기술 진화기가 열릴 때는 다시금 하드웨어 추격전이 가능했다. 이건의 회장은 그때 수직적 부품 결합을 통한 추격전을 개시했다.
  • 애플은 1인 경영을 통해 혁신의 속도를 내는 반면에 삼성전자는 1인 경영을 통해 진화의 속도를 내는 기업이다. 결국 관건은 애플과 구글이 만들어낼 다음 혁신의 폭풍 속에서 다음 진화의 시기까지 삼성전자가 견뎌낼 수 있느냐다. 삼성전자는 혁신 조직이 아니라 진화 조직이기 때문이다. IT 산업은 혁신가들이 폭풍 같은 혁신으로 진화자들을 집어삼키고 그 폭풍에서 견뎌낸 진화자들이 혁신자를 밀어내고 시장을 차지하는 싸움을 영원히 반복한다.
  • 다음 혁신의 폭풍이 다가올 때 삼성전자는 또 한 번 흔들릴 공산이 크다. 삼성이 여전히 이건희 패러다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성공했고 결국 소니가 그랬던 것 처럼 그런 성공 신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제까지 구글-삼성 연합군이 유지될지도 알 수 없다. 구글의 이미 모토로라 통해 하드웨어 제조 기반을 확보했다. 지금 삼성전자가 필요하지 앞으로도 필요하진 않다는 얘기다.

 

 

Fine. thy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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